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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의 왕자님 _ 리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한 겨울, 고타츠 속에 들어간 채로 나온 말 치곤 꽤 여름 향기가 묻어나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두 사람 모두 기모로 된 후드를 입고 있는 와중에는 더욱 그랬다. 덕분에 만화책에 집중하고 있던 키쿠마루는, 옆에서 흘러내린 후드의 어깨를 끌어올리는 자신의 여자친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츠바사는 아예 책을 덮어버린 상태였다. 점심을 함께 먹은 지 약 세 시간여 지난 뒤였다. 딱 디저트가 떠오를 타이밍이었다.

“전에 사다 둔 거 있지 않냥?”

“다 먹었어. 사러 가야 돼.”

귀찮음에 절인 듯한 목소리였다. 하긴, 이런 날씨에는 키쿠마루 역시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눈이라도 내렸으면 눈싸움이니 눈사람이니 하는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나갔겠지만, 오늘은 그저 칼처럼 매서운 바람만 불어댈 뿐이었다. 오후 4시, 아직 해는 넘어가는 중일 테니 가려면 햇볕의 따뜻함이라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말하고 나니까 나도 먹고 싶다냥…….”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처럼, 츠바사는 추욱 늘어져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따뜻한 고타츠를 빠져나가 추위를 뚫고 아이스크림을 쟁취해 올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안락하고 포근한 거실에서 나태를 만끽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키쿠마루는 똑같이 테이블 위로 늘어졌다. 한쪽 볼이 불룩해진 츠바사와 눈이 마주치고, 키쿠마루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사러 가기!”

“혼자 가?”

키쿠마루는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자신이 나갔다 오겠다 하면 따라나설 게 분명했다. 이 추운 날씨에 굳이 둘이 같이 나가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편이 조금 나른해져 있는 츠바사를 깨우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역시나, 츠바사의 눈동자가 조금 반짝이는 게 보였다.

“자, 그럼~”

“가위~ 바위~ 보!”

아뿔싸.

자신이 이길 확률을 간과했다는 게 이 제안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잠깐의 정적 뒤로 츠바사의 고개가 훅 바닥으로 떨어졌다. 츠바사는 가위바위보에 강한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키쿠마루는 가위바위보에 강했다. 시무룩하게 쳐진 어깨를 보고 키쿠마루는 당황했다. 손을 허둥거렸지만 츠바사는 금세 번쩍 고개를 들었다.

“으으으~ 껴입고 나갈래.”

“응! 패딩 입으라냥, 내 거 입을래?”

끄덕끄덕, 츠바사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키쿠마루는 잽싸게 뛰어가 패딩을 꺼내왔다. 츠바사에게는 분명 큰 치수였지만 그 편이 훨씬 따뜻할 터였다. 손이 반쯤밖에 나오지 않은 츠바사를 대신해 지퍼를 채워주고, 키쿠마루는 모자까지 머리 위로 덮어 씌웠다. 마치 에스키모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날 것 같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큰 거 사 와서 퍼먹자!”

“좋아!”

“뭐 먹지?”

“음~ 츠바사 먹고 싶은 걸로 골라와!”

츠바사가 눈을 깜빡거리며 키쿠마루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떤 메뉴를 고를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잠깐 동안 바닥과 천장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던 시선이 겨우 다시 돌아왔다. 키쿠마루는 환하게 웃으며 패딩 위로 츠바사를 한 번 꼭 끌어안았다. 부스럭 소리가 요란했다.

“품 따뜻하게 데워놓고 기다리겠다냥!”

“응, 다녀올게!”

막상 나갈 마음을 먹고 나니 별로 귀찮지 않은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 있던 나른함이나 귀찮음은 싹 날아간 개운한 표정으로 츠바사는 배시시 웃었다. 지갑을 주머니에 밀어 넣고 현관문 앞에 선 츠바사를 키쿠마루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어서 오라냥!”

“추워어어…….”

모자까지 덮어씌웠는데도 츠바사의 볼이 빨갰다. 키쿠마루는 봉투를 받아들어 일단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츠바사를 향해 활짝 팔을 벌렸다. 주섬주섬 패딩을 벗어던진 츠바사가 폭 품으로 들어와 안겼다. 아이스크림 가게까지는 약 오 분, 왔다 갔다 하는 그 잠깐 사이에 몸이 차가워져 있었다. 끌어안은 채로 등을 몇 번이고 쓸어내리던 키쿠마루는 그대로 츠바사의 허리를 꼭 잡아 번쩍 들어올렸다.

“으아아!”

“고타츠까지 서비스.”

헤헤 웃으면서도 키쿠마루는 화장실에 먼저 들러 손을 씻게 하는 걸 잊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츠바사를 번쩍 안아 올려 고타츠까지 단숨에 옮겨갔다. 안겨있는 게 꽤 좋았던지 츠바사는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키쿠마루는 제 앞에 츠바사를 앉히고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가까이 붙어있는 만큼 서로의 체온이 더해졌다.

“쿠앤크랑 딸기랑 또 뭐 섞어서 사왔는데.”

“히, 다 좋다냥.”

포장해 온 아이스크림 용기의 뚜껑을 열자 냉기 때문에 김이 올라왔다. 일회용 숟가락을 뜯는 손길이 분주했다. 한 숟가락 크게 뜬 츠바사는 숟가락을 뒤로 먼저 들이 밀었다. 키쿠마루가 앙 하고 숟가락을 물 때, 츠바사도 배시시 웃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맛있다~”

아이스크림을 아직 입에 물고 있어 발음이 뭉개졌지만 상관없었다. 만족한 듯 츠바사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더 중요했다. 이어서 크게 뜬 숟가락이 이번엔 츠바사의 입으로 향했다. 츠바사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앙 다문 입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녹이는 중인지 시린 듯 한 표정이었다. 츠바사는 다시 키쿠마루에게 아이스크림을 떠 먹였다. 따뜻한 고타츠와 등을 데워주는 적당한 체온, 그리고 입 안 가득 퍼지는 차가움. 아이스크림은 역시 겨울에 먹기 제일 좋은 디저트였다.

“추운데 고생했다냥.”

그리고 달달한 한 마디에 기분 좋게 볼을 붉히는 귀여운 여자친구까지, 아주 완벽한 어느 겨울날의 오후가 저물고 있었다.

with. 키쿠마루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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