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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 _ 토로레

“ 저기, 카렌. 아무로씨… 여자친구 있을까? ”
 
“ 저 정도로 잘생겼음 있지 않을까? ”
 
“ 어, 없을 수도 있지! 한 번 봐줘. 너밖에 없어…! ”
 
 
 탐정 사무소 아래에 위치한 소박한 카페, 포와로. 그곳에서는 막 고등학교에서 하교한 여고생 네 명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정도 목소리로 얘기하는데 본인에게 들리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건지 미사키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부탁을 해왔다.
 
 
“ 알겠어. 그치만 이건 그저 점치는 것뿐이니까 너무 맹신하지는 말고. ”
 
“ 알아, 알아! 그냥 아는 것만으로 충분해. ”
 
 
 가방에서 숫자와 알파벳이 각각 하나씩 적힌 카드를 꺼내어 능숙하게 섞은 후 탁자 위에 늘어뜨려놓았다. 곧이어 내가 한 개의 카드를 골라낸 후 뒤집자, 0이라는 숫자가 적힌 카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지금은 없는 것 같네. ”
 
“ 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앞으로 교회 열심히 다닐게요! ”
 
 
 두 손을 모아 테이블에 얼굴을 박은 미사키는 어지간히도 기쁜 모양인지 울먹이며 하나님과 언제 지킬지 모르는 약속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현실성 없는 이 능력이 도움이 되기도 하는 구나 뿌듯했다.
 
 
“ 왜 하필 교회야? 카렌교를 다녀야하는 거 아냐? ”
 
“ 하하, 그러니까 말이야. 그치, 카렌? ”
 
“ 아냐, 뭘 그정도까지. ”
 
 
 나는 때때로 만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들은 사실 어디선가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붙잡고 사실 나는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라고 해도 믿어줄 사람은 전무하겠지만.
 
 
“ 하하, 무슨 재밌는 이야기해요? ”
 
 
 잘생긴 목소리와 함께 잘생긴 남자가 등장했다. 주문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가져오며 아무로씨가 우리에게 묻자, 미사키는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대답했다.
 
 
“ 아, 카렌쨩의 신기(神氣)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
 
 
 그는 잡지에는 얼굴이 실리지 않았지만 이 근방에서는 잘생긴 남직원으로 유명했다. 천연인 건지 아니면 그 사실을 잘 알고 이용하는 건지 알 수 없으나 뭐 아무래도 좋았다.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미사키를 말릴 필요까지는 없겠지.
 
 
“ 신기일 것까지야. 그냥 찍기를 잘하는 것 뿐이야. ”
 
 
 실제로 그렇다. 나, 미즈사와 카렌은 찍기라면 100% 맞출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타로처럼 점을 치는 것은 아니지만, 숫자와 알파벳을 조합한 카드들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 어느 범위까지 통용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을 행하고나면 그에 대한 방향을 잡아주려는 듯이 머릿속에서 키워드가 되는 무언가가 함께 떠오르고는 하는데 나는 아마 이것이 갑작스럽게 이세계(異世界)에 떨어진 나를 위한 최소한의 생존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 그치만 너 진짜 유명하다고? 타학교에서 찾아와선 봐달라고 할 정도잖아? ”
 
“ 거야, 용돈벌이가 되니까 한 두 번씩 하는 정도지. 대부분 그냥 궁금해서 구경하러 오는 애들 뿐이고. ”
 
“ 호오. ”
 
 
 이쯤하면 눈치 챘겠지만 나는 원래부터 이곳에서 자란 인간이 아니다. 어느 새 정신을 차려보니 이세계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같은 영화나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내게는 현실이 되었다. 고통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이곳에서의 현실이 계속 이어지면서 나는 이곳의 생활이 결코 꿈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그거 나도 보여줄 수 있어요? ”
 
“ 좋아요. 우선, 신뢰도를 높이는 게 먼저겠죠? 괜찮으시다면, 아무로씨가 여기서 일하시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맞춰볼게요. ”
 
 
 사실 내가 궁금하기도 해서 아무로씨에게 먼저 제안한 것이기도 했다. 꼭 직업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타내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표이기는 하니까.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미사키의 사랑을 응원해주고 싶고, 그 대상인 아무로씨가 좋은 사람이기를 바랐다.
 
 
“ 네… 뭐, 재밌겠네요. ”
 
 
 그러나 카드의 결과는 꽤나 심난했다. 떠오른 키워드 역시 꽤나 위험한 것이어서 나는 조금 심정이 복잡해졌다.
 
 
“ 총기와 관련된 일을 하셨나봐요. ”
 
“ 뭐? 총?! ”
 
“ 진짜 총이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알고보니 사격선수였을지도 모르지. ”
 
“ 우와! 아무로씨, 사격선수였어요?! ”
 
 
 친구들은 사격선수 중에 아무로 토오루라는 이름이 없나 폰으로 서둘러 검색하기 시작했고 아무로씨는 순간 표정을 굳혔다.
 
 
“ 아무로씨? ”
 
“ 아,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
 
 
 그러나 그는 언제 그리 무서운 얼굴을 했냐는 듯이 평소처럼 돌아왔고  나는 잘못본 것인가 싶어서 그를 계속 관찰하려다가 그만두었다.
 
 
“ 틀렸는지 안 틀렸는지는 아무로씨만이 알겠죠. ”
 
“ 굉장한데요? 전에 밀리터리 상품 파는 데서 일한 적이 있거든요. 진품은 아니고 전부 장난감이었지만. ”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분위기가 잠깐 날카로워졌다고 느꼈으나 역시 착각이었을까. 음음, 편견을 갖는 것은 좋지 않지.
 
 
“ 우와아, 카렌쨩 굉장해! ”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무로씨께서 내게 디저트 서비스를 주기 시작하셨던 것은.
 
 친근하게 말을 붙이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나와 같은 집에서 하숙 생활 중인 오키야씨에게 아무래도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미사키, 이건 나도 예상 못했어. 아무로씨가 게이일 줄은 나도 몰랐다고. 미안하구나.
 
 힘든 사랑을 하시는 만큼 응원해줄 생각은 이미 있었는데 아무로씨께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주시기까지 하니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오키야 스바루씨의 정보(?)를 아낌없이 알려드리기로 했다.
 
 
“ 카렌씨랑 오키야 스바루씨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가요? ”
 
“ 음, 첫 만남이 강렬하긴 했죠…. ”
 
 
 그 말에 아무로씨가 살짝 긴장하신 것 같았다. 긴장 푸세요. 아무로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닙니다. 전 아무로씨를 응원하니까요. 차마 이 말은 입밖으로 내뱉지 못했으나 진심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날을 회상했다.
 
 
 
  
 * *
 
“ 내 놔, 아가씨. 네가 가지고 있는 거지? ”
 
 
 지금 나는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 아직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여고생을 골목에 몰아넣고 위협하고 있는 불량배라니,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 저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
 
“ 오늘 오전에 마주쳤던 사람이라곤 너 하나였어!! 그 때 일부러 부딪히는 척 하면서 내 주머니 속 USB를 가져간 거지?! ”
 
“ USB? 아…. ”
 
 
 그러고보니 아침에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 걷다가 뒤에서 누가 들이박는 바람에 내 휴대폰이 박살나는 참사가 있었다. 부숴진 휴대폰을 보고는 절규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USB를 혹시라도 주인이 다시 돌아올까 싶어서 근처 상가 주인분께라도 맡겨두려고 했었으나, 주머니에 넣어두고 깜빡해버렸다. USB의 주인이라면 잃어버린 물건을 주워준데다가 내 기물을 파손한 대가를 받아내도 모자랄 판인데 지금 나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 USB는 집에 두고 왔어요. ”
 
“ 뭐? ”
 
“ 가지러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물론 거짓말이다. 아까 말했다시피 넣어두고 깜빡했으므로 그것은 아직 내 치마 주머니에 잘 들어있다. 집에 갔다온다는 건 구실이고 이 순간을 모면한 뒤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다고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짜고 있었다.
 
 
“ 거, 거짓말 하지 마! 지금 당장 내 놔! ”
 
“ 내용물은 안 봤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잘 돌려드린다니까요. ”
 
 
 어떤 흑역사가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남의 흑역사를 구경하는 취미는 없다. 저토록 공격적이 될 정도로라니 빨리 돌려주고 휴대폰 수리비나 받아내야겠다.
 
 
“ 그것보다 그쪽 제 휴대폰 부숴먹고 그냥 갔더라고요. 배상해주셔야겠…악! ”
 
 
 내가 그를 지나쳐가려고 하자 그가 갑자기 내 팔목을 확 잡더니 나를 다시 골목으로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나는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엉덩방아를 찧었다.
 
 
“ 말로는 안 되겠구만, 아가씨. ”
 
 
 그는 위협적으로 다가와 나를 위에서 짓누르며 내 옷 이곳저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공포를 느꼈고 이제서야 스스로가 곤란한 상황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에 처해졌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남자의 꾸엑- 하는 비명이 들리더니 안경을 쓴 코트의 남자가 등장했다.
 
 
“ 대낮에 여고생에게 손을 대는 치한이라니…, 괜찮습니까? ”
 
“ 고, 고맙습니다…. ”
 
 
 나를 도와준 남자가 뻗은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직도 아까의 공포가 가시지 않은 모양인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 평소에 안전불감증이라는 소리 종종 듣지 않습니까? ”
 
“ 네? ”
 
“ 이런 으슥한 골목은 굳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당신이 스스로 찾아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
 
 
 뭐 반쯤 정답이기는 한데, 나는 단지 지름길을 지나가느라 이 근처를 걸었을 뿐이다. 번화가가 덜 위험하기는 하지만 빙 돌아가야하는 건 상당히 번거롭지 않은가. 그러나 일일히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귀찮아서 나는 그냥 대답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러는 댁이야말로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어려운 이 골목을 어떻게 따라들어온 건데?
 
 
“ 낯선 아저씨가 과자를 사준다고 함부로 따라가면 안 됩니다. ”
 
“ …저를 몇 살로 보시는 거예요? ”
 
“ 집까지 데려다드리도록 하죠. ”
 
“ 괜찮아요. 혼자서 갈 수 있으니까. ”
 
“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 사람을 경찰에게 인계해야하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
 
“ 감사합니다. 아, 저기! ”
 
 
 몇 번이고 데려다준다고 하면 그 때에는 아무 집이나 집어서 우리집이라고 이야기하고 가려했는데 다행이도 그는 여러 번 권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비록 나를 구해주었으나 왜 인지 워낙 수상해보이는 모습에 조금 경계했으나 그래도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명확했으므로 뒤늦게 그를 붙잡았다.
 
 
“ 꼭 사례를 하고 싶은데 전화번호라도 가르쳐주시면…. ”
 
“ 괜찮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때에. ”
 
 
 언제 만날 줄 알고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때에 해달라는 건지. 그보다 내가 그 때까지 자기 얼굴을 기억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나 생각보다 사람 얼굴 잘 기억 못하는데. 결국 상대방은 사례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겠지 라고 생각한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 다녀왔습니다…. 아, 오늘 너무 피곤했다. 응? ”
 
“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신세지게 되었습니다. 오키야 스바루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
 
 
 그리고 아까 그 남자를 집에 오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 * *
 
 한창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던 와중, 내 휴대폰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오키야 스바루씨도 양반은 못 되네, 따위의 생각을 하며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 카렌 양, 디저트를 만들었는데 드셔보시겠습니까? ]
 
“ 낯선 아저씨가 주는 음식은 함부로 받아 먹으면 안된다고 배웠는데 말이죠. ”
 
[ ……. ]
 
 
 아차. 나도 모르게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당시에 대답하겠다고 벼르던 말을 못해서 넣어두었던 한 마디를 내뱉어버렸다. 아저씨라는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오키야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내 옆에 있던 아무로씨에게까지 들렸는지 그의 풋-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 그런가요. 아쉽군요. 오늘은 카렌 양이 좋아한다는 초콜릿 케이크로…. ]
 
 덜컹-!
 
 
“ 갑자기 집에 급한 용무가 생겼습니다. 가봐야할 것 같아요. 아무로씨, 다음에 다시 올게요! ”
 
“ 카, 카렌씨?! ”
 
 
 나는 오키야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고 아무로씨에게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달렸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사실 오키야씨의 디저트는 내 입맛에 꼭 맞춤형이었다. 어디서 돈 주고 사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로씨, 죄송해요. 이 디저트 만큼은 양보 못 해요. 그에게 닿지 않을 사과를 속으로 짧게 생각했다.
 
 뚜뚜-
 
 통화가 끊긴 전화를 내려다보던 오키야 스바루는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 덧붙입니다. 원래 뭔가 주석을 다는 걸 안 좋아하는 편이지만... 제 실력 부족인 탓이겠죠ㅠㅠㅠ 미즈사와 카렌은 어린 시절 쿠도 가와 잘 알고 지내던 사이입니다. 부모님끼리 친한 사이. 어릴 때 외국에서 오랜 세월 지내다가 일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해서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은 함께 돌아올 수 없어서 쿠도 가에 맡겨졌고 그 당일 날 스바루와 만난 겁니다. 스바루와 지낸 지 한 달이라고 했는데 제가 정확히 스바루가 쿠도 가에서 얼마 후에 아무로가 나타나는지 몰라서 임의로 쓴 것입니다. 설정오류라도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with. 오키야 스바루 . 아무로 토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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