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도사변 _ Esoruen
에노키의 입맛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린아이와 같았다. 이것저것 편식이 심한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달고 짠 것을 좋아하니 아이 같다 할 수 있겠지. 적어도 키리시마의 눈에 보이는 에노키의 입맛은 그랬다.
간식을 좋아하는 그녀는 식사 시간 외에도 심심치 않게 뭔가를 물고 있는 경우가 잦았다. 사탕이나 초콜릿, 모나카나 별사탕… 꽤나 다양한 먹거리를 번갈아가며 즐기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는 예상외로 달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전병이었다.
“뭐라고 할까, 와작와작 씹어 먹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좋아요!”
물론 맛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은 그녀가 헤헤 웃는다.
그리도 좋을까. 키리시마는 다른 간식은 그냥 넘어가도 전병 앞에서는 지갑을 열어버리는 그녀가 신기했다. 바삭바삭한 과자라면 전병 외에도 꽤 많을 텐데. 혹시 다른 과자들을 많이 먹어보지 못해 그런 게 아닐까 했지만, 그녀가 평소에 먹는 과자 종류를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가정이었다. 키노시타가 귀여워하며 사준 과자 종류만 생각해도, 아마 두 손으로 꼽다가 까먹을 정도의 수인데.
“에노키, 다 좋지만 흘리면서 먹진 마라”
“먹고 나서 제대로 치우니까 괜찮다고요? 그러지 말고 키리시마도 같이 먹을래요? 어제 임무 나갔다가 사온 건데!”
임무 나갔다가? 그 소리는, 지상의 과자라는 것인가. 에노키는 저렇게 보여도 꽤 성실하니 일을 소홀히 하고 과자만 덜컥 사왔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정신없는 와중 먹고 싶은 걸 사오다니. 어떤 의미로든 참 대단했다.
키리시마는 먹는 걸 싫어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한다고 하는 게 맞겠지. 키리카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보기만 해도 배부를 정도로 잘 먹는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그냥 준다는 과자를 거절할 리가 있을까. 고개를 끄덕인 그는 그녀가 내민 전병을 받아 한입에 물었다. 바삭. 유쾌한 소리와 함께 두꺼운 전병이 두 동강 났다.
“어때요? 맛있죠? 새우 전병인데!”
“음”
확실히, 짭조름한 것이 입맛을 돋우는 맛이다. 분명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자꾸 입에 넣고 싶은 것이 중독성이 장난 아니다. 차만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타오는 것이 좋을까.
“에노키, 말차는?”
“응? 마시고 싶어요!”
“그런가. 다녀오겠다”
아직 휴식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느긋하게 차라도 한잔 하며 전병 한 봉지를 나눠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요 며칠간 그녀도 자신도 바빠서 같이 일을 나갔을 때를 제외하곤 느긋하게 대화도 해 보지 못했었으니까. 낮잠을 자거나 산책을 하는 것도 좋은 휴식방법이지만, 제게는 그녀와의 대화도 나쁘지 않은 휴식이었다. 타니자키는 ‘그런 시끄러운 녀석 옆에 있다보면 오히려 기가 빨리는 것 같다’고 했지만, 키리시마는 오히려 그 점을 더 좋아했다.
부엌에 간 그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쉬고 있는 키리카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어머’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발견한 키리카는 읽던 책을 덮고 반갑게 키리시마를 맞이해 주었다.
“키리시마 쨩, 무슨 일이니?”
“죄송합니다. 말차 두 잔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만…”
“말차? 알았어, 금방 타올게! 후후. 에노키랑 마시려고?”
“예? 아, 네”
어떻게 안 거지. 키리시마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눈을 둥글게 떴지만 키리카는 말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가 부엌 안쪽으로 사라지고, 차가 준비될 동안 우두커니 서있는 키리시마는 어떻게 그녀가 제 의도를 파악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까 에노키가 전병을 들고 가는 걸 본 건가? 아니면, 단순히 감으로 찍었다던가. 자신과 함께 붙어있는 상대는 대부분 사에키 아니면 에노키였으니까, 확률은 반반이었겠지.
생각이 끝나기도 전 키리카는 차 두 잔과 함께 돌아왔다. 쟁반 위에 가지런히 놓인 찻잔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 그 기분 좋은 말차 향에 생각하던 고민도 잊은 키리시마가 쟁반을 받아들었다.
“자! 뜨거우니 조심하렴”
“아, 감사합니다”
“이게 내 일인걸, 후후”
‘그럼, 좋은 시간 보내렴’ 키리카는 부엌을 나가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좋은 시간이라. 전병과 차만 있어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상대가 에노키이기 때문이겠지. 차가 쏟아지게 않게 조심하며 휴게실로 돌아간 그는 에노키를 부르려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혼자 있어야 할 그녀 옆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키리시마 왔어요?”
자신이 온 걸 눈치 채고 에노키가 먼저 말을 붙이지만, 키리시마는 거기 대답하지 않고 불청객에게 말을 걸었다.
“타가미”
“아, 왔냐”
와작. 전병을 우물거리며 답하는 동료의 얼굴이 얄밉다. 왜 그가 여기 있는가. 일이 없으면 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낮잠을 자는 게 전부인 녀석이. 다 좋은데 왜 에노키 옆에. 표정변화가 적은 키리시마는 대놓고 인상을 쓰거나 기분 나쁘다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눈빛이 변하는 것 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 와있었지?”
“방금 왔다만.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동료인데 자리를 비키라는 말은 할 수 없지. 선은 지킬 줄 아는 키리시마는 불평을 속에 꼭꼭 감춰두고 에노키의 맞은편에 앉았다. 사람은 셋인데 차는 두 잔 뿐. 이건 조금 곤란하지만 애초에 늦게 온 사람이 잘못이다. 키리시마는 한 잔은 에노키에게, 한 잔은 자신 앞에 놓고 쟁반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내건?”
“네가 없을 때 준비한 거라. 미안하군”
와그작. 전병을 베어 물고 말차를 마시는 키리시마의 표정이 조금 개운해졌다. ‘억울하면 본인이 가서 부탁해 오면 된다. 이왕이면 그렇게 간 김에 다시 안 돌아와도 되고’ 키리시마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보이기라도 한 걸까. 타가미의 표정이 슬쩍 구겨졌다.
저렇게 나온다면 자신도 생각이 있지. 타가미는 제 옆에서 차를 홀짝이는 에노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야, 나도”
“응? 타가미도 마실래요?”
“목말라”
“나 참. 여기요!”
상냥하고 눈치 없는 에노키는 별 의심도 않고 제 찻잔을 타가미에게 넘겨주었다.
아직 따끈따끈한 차는 찻잔의 반 이상 남아있다. 입에 대기 전 가만히 차를 내려다보던 타가미는 무슨 생각이 든 건지, 갑자기 남아있는 차를 제 입안에 모두 털어 넣었다.
“앗?!”
제 차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노키는 그것만으로도 경악했지만 곧 차의 온도를 떠올리고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안 뜨거운 걸까? 그 온도라면 입 안이 아니라, 위장까지 데일 것 같은데. 당황해서 얼어버린 그녀를 보던 타가미는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뭐”
“뭐, 가 아니죠!! 내 차가…!”
“다 마시라고 준 거 아니었나?”
“아니에요!!”
억울하다는 얼굴로 타가미의 팔을 흔드는 에노키는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어떻게 그걸 한입에 다 마셔요?!’ ‘그것보다 안 뜨거워요?!’ ‘혀 안 데였어?!’ 따발총마냥 쏟아지는 모든 말들은 타가미를 향한 것. 키리시마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타가미와 에노키를 번갈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방식이 어떻든 저렇게 한 번에 에노키의 주의를 빼앗아 가다니, 아주 얄미울 지경이다.
“전병이랑 차 잘 먹었다”
“어?! 어디 가요?!”
“자러”
그럼 이만. 볼일은 끝났다는 듯 에노키의 이마를 툭 밀고 일어선 타가미가 키리시마를 힐끔 쳐다보았다. ‘꼴좋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키리시마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고 제 차를 에노키에게 내밀었다.
“갈 거면 빨리 가라”
“그러려고”
차는 아직 따뜻한 게, 어쩐지 방의 공기는 싸늘하다. 에노키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전병을 베어 물었다. 와삭. 전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냉기도 금이 가는 것 같았다.
with. 키리시마 . 타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