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_ 별사탕
짜게 식은
대표적인 생초콜릿으로 분류되는 파베 초콜릿은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포석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온도조절을 통해 카카오 버터 안에 들어있는 지방산들을 서로 붙여 결정을 만드는 작업, 혹은 탬퍼링이라 불리는 작업이 필요 없어서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초콜릿 중 하나이다. 냄비에 지방 45% 정도의 생크림을 110g 가장자리에 살짝 기포가 올라올 정도로만 끓인 뒤, 다크 커버춰 초콜릿 220g 가량과 버터 약간을 넣어 녹인 뒤 색이 고르게 잘 저어준다. 이때 초콜릿이 타지 않게 주의해야 하며.......
내신 시험을 준비하듯이 레시피를 끊임없이 되뇌며, 나오코는 나 요리를 글로 배웠소, 하고 얼굴에 써놓고 광고하듯 초콜릿을 섞고 있었다. 평생 자신은 요리를 못한다고 자부한(?) 17년이었지만, 초보자들이 만들기 가장 쉽다는 초콜릿을 열심히 만들며 그녀는 나름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나는 전교 1등도 해봤고 전국 모의고사 석차 100등 안에도 들어봤고 반장이고 하여튼 잘 하는 게 많은 사람이야! 힘내라, 이마하라! 그렇게 파이팅을 다지며 열심히 휘젓고 있는 주걱을 다잡았다.
그래서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요리를 만들기로 소문이 자자한 나오코가 난데없이 초콜릿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랑 때문이었다. 사랑! 나오코는 코웃음을 쳤을 테지만 정말 그것은 사실이었다. 단순한 관심, 좋아함, 신경 쓰임, 쳐다보게 됨, 두근거림, 등등 대용의 증상은 많고 많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사람한테 자꾸 눈길이 가고 안하던 짓까지 하게 되면 그것이 사랑이지 다른 게 있겠는가.
그렇지만 나오코는 이 병을 “학교 안의 여자들이란 여자들 모두한테 들이대다가 결국에 발렌타인데이 때 아무것도 받지 못할 그 짜증나는 마츠노 녀석이 조금은 불쌍해서 착한 내가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건네주는 작은 호의”라고 이름 붙였다. 완벽한 변명이였다 - 물론, 놀랍게도, 오소마츠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꽤 많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점만 제외하고 본다면. 나오코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그녀를 짜증나게 만드는 100가지 것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물론 그녀는 그것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오코는 믹스의 색깔이 어느 정도 진한 갈색을 안정되게 띄어가자 휘젓는 것을 멈추고 새끼손가락 끝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그녀의 취향에는 상관없었지만 분명 그 초등학생 입맛의 마츠노는 다크 초콜릿을 먹고 아 써! 라고 소리치며 초콜릿에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 분명하였다. 역시 그냥 초콜릿을 사왔어야 했나, 하고 그녀는 잠시 후회했지만 이내 단 맛은 내면 되지! 다짐하고 힘을 내고는 부엌에 놓여있던 하얀 가루를 조금 넣었다. 흰 알갱이가 이내 따뜻한 반죽 속에 녹아들어갔다. 나오코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보고는 초콜릿을 사각형 틀 안에 넣었다. 이제 굳히기만 하고 내일 자르면 됐다.
뚜껑을 덮고, 그녀는 초콜릿이 시간을 두고 굳을 수 있도록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뒷정리를 단정히 하고, 먹을 것이 없는지 찾으며 주방에 좀비처럼 걸어가는 제 남동생에게 “식탁 위에 있는 거 먹으면 죽여 버린다!” 라고 외치는 것도 잊지 않은 채.
뿌듯한 마음으로, 나오코는 잠에 들었다.
그러니까 파이팅 넘치게 요리를 만들었던 어제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소마츠에게 뭐라고 말할지 수백 번은 머릿속에서 리허설 하던 나오코는 졸린 걸음으로 주방에 들어가 초콜릿이 잘 굳은 것을 확인하고, 깔끔하게 그것을 뗀 다음에, 코코아 파우더가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 비닐봉지에 부어넣고 초콜릿을 완벽하게 자르고 비닐봉지에 넣어 흔들어 섞었다. 쟁반에 그것을 올려놓자 꽤나 먹음직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고, 나오코는 기분 좋게 웃었다. 예쁜 상자에 초콜릿을 담기 전에, 마지막으로 맛을 보기 위해 가장자리를 살짝 잘라 제 입에 넣고는, 그녀는 입 안에 퍼지는 강한 짠 맛에 그것을 바로 뱉어냈다.
에? 짠 맛? 입을 닦으며, 그녀는 완전히 당황해 초콜릿을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설탕이라고 생각했던 흰 가루를 반죽 안으로 때려 부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녀는 서둘러 찬장으로 가 순진하게 놓여있는 소금이 담긴 통을 발견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것은 설탕이라고 적혀 있는 병에 담겨있었다.
나오코는 길게 신음을 내뱉으며 버석한 얼굴을 비볐다. 아,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제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헝클이며, 그녀는 부엌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어깨동무하고 바닥을 치는 것을 느끼며, 미쳤나봐, 미쳤나봐, 왜 소금을 넣었냐고! 그녀는 다시는, 다시는 절대로 요리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얘기였고, 지금은 이 사태를 해결해야했다. 그녀는 두뇌를 풀가동시켜 이 짜디 짠 초콜릿을 그에게 줬을 때의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저기, 마츠노 군, 사실은 널 좋아했어! 여기 초콜릿!!’ *오소마츠는 초콜릿을 먹는다* ‘뭐야! 왜 이렇게 짜! 우리 헤어져!’ 아니 이건 최악의 시나리오고!
‘오다 주웠다 마츠노!’ *초콜릿을 먹는다* ‘진짜 주워왔냐 미친자야! 뭐가 이렇게 짜!’ 이건 그냥 평범하게 이상해 보이고!
*초콜릿을 준다* ‘나오코 쨩.......! 나한테 주는 거(두근)? ’‘응....... 오소마츠 군, 사실 널 좋아했어.......’ ‘아아......!“ *초콜릿 섭취* ’뭐, 뭐야, 왜 짠 거야?‘ ’훼이크다 이 개새끼야!‘ *창문으로 탈주*
아무리 생각해도 망했다. 나오코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머리를 벽에 처박았다.
아무리 망한 초콜릿을 만들었더라도 우선 학교에 가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여서, 나오코는 자신을 추스르고 초콜릿을 포장해서 가방에 넣고 준비를 해서 등교했다. 제 자리에 앉아 가방을 턱, 내려놓고 책상 위에 풀썩 쓰러져 있자니 오만 생각이 다 들어 머리를 괴롭혔다. 이걸 차마 당당하게 줄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머리를 옆으로 돌려놓고는, 그녀는 0교시 자습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멍하게 엎드려 있었다.
“하아~ 올해도 한 개도 못 받았다~” 자신과 몇몇 사람을 제외한 텅 빈 교실에 울려 퍼지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나오코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쟤는 왜 또 답지 않게 일찍 오는 건데! 그녀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오소마츠는 교실을 두리번 거리다가 엎드려 있는 나오코를 발견하고는 뛰어갔다.
“나오코 쨩~ 혹시 나한테 줄 건 없어?”
“없어.” 나오코는 딱 잘라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에, 하고 오소마츠는 실망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옆의 의자를 끌어다 거꾸로 앉고는, 그녀의 책상 위에 턱을 괴고 뭉개진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뭐야. 난 나오코가 날 사실은 좋아하고 있었던 마음에 오늘을 기회로 삼아 자연스럽게 초콜릿을 줄 줄 알았는데.” 뜨끔, 나오코는 속으로 오만 욕을 다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 열심히 논쟁에 불을 붙였겠지만 오늘의 나오코는 그럴 힘조차 없어서 그냥 조용히 있었다. 그것이 이상해 오소마츠는 턱에서 천천히 얼굴을 뗐다. “나오코 어디 아파?” 나오코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오소마츠는 그녀의 얼굴을 살피기 위해 목을 쭉 빼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헤에- 나오코 쨩은 초콜릿 하나도 못 받은 이 오빠야가 불쌍하지도 않나보네! 나오코라면 분명히 초콜릿 많이 받았을텐데.”
사실 제 사물함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던 나오코는 몸을 일으켜, 한숨을 내쉬고는 얼굴을 비볐다. “여자애들이 전체 반한테 돌리는 초콜릿도 있잖아. 그거 받았을 거 아냐. 그거 먹어.” 오소마츠는 그 말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의미 없잖아 그거! 그냥 모두한테 돌리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모름지기 발렌타인데이란 귀여운 여학생이 멋진 남학생한테 좋아함의 의미와 정성을 담아 만든 초콜릿을 선물함으로써 발생하는 거지.”
아아, 순진한 오소마츠 씨, 가끔은 사먹는 게 더 효용이 높을 때가 있더라고요. 나오코는 미간을 문지르며 다시 앞으로 엎드렸다. “그럼 먹지 말던가.” 오소마츠는 상처받은 듯한 얼굴을 하면서 한 손은 제 가슴에, 한 손은 제 머리에 가져다 대고는 드라마틱하게 소리쳤다. “상처야! 먹을지 말지를 결정하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나오코의 진심이 담긴 초콜릿이 먹고 싶은 거란 말이야.” 아, 시끄러워. 그녀는 눈치도 없이 계속 재잘거리는 저 새끼가 점점 짜증나기 시작했다.
“오늘 너 이상해. 왜 이렇게 짜게 식어있어?” 짜게. 나오코는 움찔하고는 고개를 굴려 그의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알 바 아니야.”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에,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체, 하고 내뱉고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나빠. 나는 오늘이야말로 나오코 쨩이 열심히 만든 초콜릿을 받고 나오코가 수줍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오코는 책상을 엎고 싶었다. 그걸 봐서 뭐할 건데? 괜한 기대만 하게 만들고.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나도 귀여운 나오코 쨩을 볼 수 있고~ 나오코는 나한테 숨겨왔던 너의 수줍은 마음 모두를 공개할 수 있는거고~ 나는 맛있는 초콜릿을 먹을 수 있고~” 가만히 놔두면 하루종일 이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오코는 결국 짜증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오소마츠는 깜짝 놀란 듯 몸을 뒤로 확 뺐다. 나오코는 몸을 다시 숙여 제 가방에서 초콜릿 박스를 꺼내 제 책상 위에 쾅 소리가 나게 올려놓고는 “먹든가 말든가!” 하고 외치고는 쿵쾅거리며 반을 나갔다. 몇몇 시선이 그에게 몰려들었고, 그는 가만히 앉아서 흰 박스를 내려다보았다.
틀림없었다. 상자의 끝에 달려있는 종이에는 분명 제 이름이 적혀있었다. 오소마츠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귀 끝이 빨개졌다. 천천히 종이 박스를 열고, 안을 보자 코코아 파우더가 뿌려진 단정한 초콜릿들이 열을 이루고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씩 웃고는, 그는 역시 나오코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하나를 집어 입에 쏙 넣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휴지를 뽑아 곧바로 뱉어내야 했다. 어마어마한 짠 맛이 입에 계속 맴돌았다.
오소마츠의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지옥의 초콜릿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조금 실망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장난인건가? 이런 장난을 고의로 칠 애는 아닌데....... 오소마츠는 다시 턱을 괴고 초콜릿을 바라보았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는 마른세수를 했다. 뭐냐고, 대체.......
with. 마츠노 오소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