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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 스타즈 _ 백설기

*이미 사귀고 있다는 설정
*캐붕 多

 

 

 

 

 

 

 부장인 텐쇼인 에이치의 부재로, 오늘의 부활동에는 2학년인 사쿠마 리츠와 1학년인 시노 하지메, 그리고 히가시요츠야나기 레이만이 모였다. 그들은 좋은 향기를 풍기는 차를 마시고, 작지만 달콤한 스위츠를 가끔씩 집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의 수업 이야기나, 연습에 관한 이야기, 곧 있을 드림페스에 관한 이야기 등등….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1학년의 두 사람 뿐이었지만, 리츠 또한 웬일인지 멀쩡히 깨어서 차를 홀짝대고 있었다. 햇살은 적당히 따스했고, 어쩐지 연극부실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평화로운 하루였다.

“리츠야, 놀러 왔단다♪”
“.........으엑.”

 그래, 사쿠마 레이가 갑자기 가든 테라스로 방문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 * * 

 

“사쿠마 선배… 여긴 어쩐 일이시죠.”
“텐쇼인이 여기 없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네♪”

 아가씨도 볼 겸, 우리 리츠도 볼 겸 놀러왔지. 그렇게 말하며 사쿠마 레이는 원래부터 이곳에 와야 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텐쇼인 에이치가 사쿠마 리츠를 위해 설치해놓은 그늘이 햇빛을 가려주었다. 레이는 한숨을 내쉬며 예비용으로 준비된 티컵을 하나 더 꺼내 차를 따랐다. 시선을 살짝 돌려 시노의 안색을 살펴보니 역시. 아직 용기가 부족한 그에게 삼기인이자 배덕 컨셉 유닛의 리더와의 갑작스러운 만남은 무리였던 듯 작게 떨고 있었다. 평화로웠던 내 부활동 시간은 어디로 간 거람. 하아, 하고 큰 한숨을 내뱉자, 사쿠마 레이가 생긋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스즈 아가씨를 보는 건 참 오랜만일세. 그동안 연습이니, 드림페스 준비니 뭐니 해서 잘 만나지 못했지 않은가.”
“왜 굳이 이런 곳까지 찾아오신 겁니까. 햇빛에도 약하시면서.”
“아무리 본인이라도 가끔 낮 산책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네. 참, 이건 신카이 군이 전해달라고 했던 것이네.”
“아…. 감사합니다.”

 레이는 사쿠마에게서 우파 모양의 인형이 들어있는 스노우볼을 받아 얌전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언제 도망쳐온 건지 사쿠마와 같은 쪽에 앉아있던 리츠가 레이의 옆에 앉아 그 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차 속에 레몬즙을 인정사정없이 짜 넣고 있었다. 즙이 퐁당퐁당 떨어지는 자리마다 옅은 분홍색이 물들고 있었다. 레이는 조용히 각설탕 단지를 리츠에게 밀어주곤 핸드폰을 꺼내 현재 상황을 담은, 도움을 바라는 짧은 라인을 니토와 이사라에게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 우냣!? 으로 시작하는, 어쩐지 니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글자들은 시노를 이쪽으로 보내도 된다는 의미를 띄고 있었다. 이사라에게서 도착한 라인도 니토가 보낸 것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마침 트릭스타의 일이 끝나 하교하려는 참이었다는 문자들에 레이는 예정대로라면 평온했을 그의 하교에 애도를 보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레이는 한번 더 확인을 받은 뒤 스마트폰의 화면을 껐다. 시노는 여전히 떨고 있고, 리츠는 이제 차에 각설탕을 추가하는 게 아닌 설탕차를 만드려고 하는지 각설탕용 집게를 잡은 손을 기계적으로 움직여 설탕을 넣고 있었다. 진한 색을 띄었지만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했던 분홍색 차가 걸쭉해지다 못해 찐득해지고 있었다. 리츠의 표정은 한껏 썩은 채 굳어있었다. 기쁘다는 듯 생글생글 웃고 있는 사쿠마 레이의 표정과는 정 반대였다. 레이는 작게 한숨을 쉰 뒤 말을 꺼냈다.

“시노 군. 니토 선배가 새 앨범의 컨셉 일로 급하게 얘기해야 할 일이 있으시다고 방금 라인이 왔는데... 저는 레이 선배의 대접을 해야 해서 가지 못하니까, 대신 가서 상황을 들어주시겠어요?”
“아, 정말요? 그, 그럼... 실례지만, 다녀올게요, 야나기 씨.”
“네. 그리고 리츠 선배. 이사라 선배랑 약속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갑니다. 미리 가서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 맞다. 고마워, 얏쨩.”

 시노는 주춤거리며 일어나 두어 번 인사하고 떠났다. 리츠 또한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레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벗어서 의자에 걸쳐놓은 마이와 테이블 위에 있던 핸드폰을 들고 떠났다. 가든 테라스에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다. 이제야 좀 평화로운 시간이 돌아온 것 같다고 생각하며, 레이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블루 멜로우 차의 상큼한 향이 입 안에 퍼졌다. 사쿠마 레이는 아쉽다는 얼굴을 하며 웃었다.

“이런, 리츠와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해 보나 싶었더만.”
“리츠 선배는 레이 선배를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요.”
“본인에겐 슬프지만 맞는 말이지. 하지만 이걸로 아가씨와 단 둘이 있게 되었구먼♪"
“그렇네요.”

 레이는 붉은색 마카롱 하나를 집어 작게 한 입 깨물었다.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진한 단맛이 났다. 그 사이로 퍼지는 새콤한 라즈베리의 맛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촉촉하고 쫀득한 식감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도 잘 구워진 것 같다. 슬쩍 그를 살펴보니, 연한 녹색의 마카롱을 하나 집어 들고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었다.

“마카롱을 처음 보시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닐세. 본인이 유학을 갔을 때에도 충분히 많이 보았고... 아가씨가 구운 것인가?”
“네. 점심으로 핫케이크를 먹으려고 머랭을 치다가 너무 많이 쳐버려서. 남은 걸로 구워봤습니다.”

 그 말에 그는 마카롱을 한 입 깨물었다. 씁쓰레한 녹차맛과 함께 달디 단 초콜릿 맛이 느껴졌다. 제 앞에 있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녹빛의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고 그는 피식, 하고 웃었다. 정말이지 귀여운 아가씨야. 정말로 맛있는 마카롱일세, 하고 웃어주자 내심 안심하는 것 같아 보이는 그녀에 사쿠마는 큭큭큭, 하고 웃고 말았다. 레이는 스노우볼을 들어 위아래로 살짝 흔들었다. 작은 하얀색 조각들이 볼 안에서 흩날렸다.

 그 뒤로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쿠마도 레이도 원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지라, 가든 테라스는 따스한 햇살과 옅은 바람만이 뛰놀았다. 레이가 간간히 차를 마시는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색색의 마카롱이 달았다. 사쿠마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 레이를 쳐다보았다. 얼마 전 자신이 선물해 준 검은색 리본이 연한 하늘빛의 머리카락과 함께 작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아가씨."
"네?"
"다음에는 본인을 위한, 사랑이 가득 담긴 스위츠를 만들어주지 않겠나?"

 붉은 눈동자가 곱게 휘어졌다. 레이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 사랑, 이라는 단어에 온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쓸데없이 잘생긴 사람. 레이는 속으로 꿍얼거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with. 사쿠마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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