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roject _ 휘월
하늘은 적당히 맑고,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쾌적한 날씨였다. 하지만 마이에게는 이 날씨조차 더웠는지, 그녀는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으며 손부채질을 했다. 사실, 집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그녀도 오늘 날씨가 적당히 시원해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유우타의 선물을 사기 전까지는.
“마이마이~~!!!”
멀리서 달려오는 솜사탕을 닮은 형체에 도도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던 마이의 표정은 금세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없이 두 팔을 벌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분홍색 양이 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아까까지 덥다며 불쾌지수를 올리고 있던 마이는 유우타가 품에 안기자마자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이 자신이 더욱 세게 유우타를 껴안았다.
“유-타~ 야외 촬영한다고 고생 많았어! 이건 내 선물!”
평소라면 10분이고, 20분이고 유우타를 계속 껴안고 있었을 마이였지만, 자신의 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에 마이는 유우타가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팔을 풀어냈다. 그리곤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목에 걸쳐있던 종이백을 유우타를 향해 내밀어 보였다. 평소보다 빨리 끝난 포옹에 아쉬운 소리를 하던 유우타는 갑작스런 선물에 어린아이처럼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헉! 이건 역 앞에 위치한 제과점에서 점심시간에만 한정수량으로 파는 ‘에클레르(éclair)’잖아!! 마이마이!!! 최고!!!”
“아앗, 유-타 잠시만~!!”
그리고 종이백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유우타는 감동한 표정으로 방방 뛰며 마이를 껴안으려고 했다. 평소에도 마이에게 감동한 유우타가 보이는 평범한 반응이었지만, 조금 전에도 땀 때문에 포옹을 풀었던 마이는 당황한 표정을 하며 그런 유우타를 살살 말렸다.
“좋은 오후-. 마이, 유우타.”
“애정행각은 실내에서 해줄래?”
키타코레 또한 근처에서 스케줄이 있었던 건지, 마이는 뒤에서 들려온 반가운 목소리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유우타와 마이를 번갈아 보는 류지를 향해 토모히사가 질책하듯 짧게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류지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물론 어찌 됐건 류지는 토모히사의 편이지만, 제 친구와 함께 바보 같은 토모를 약 올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류지도 고생 많았어! 이럴 줄 알았으면 류지의 몫도 사올 걸 그랬나~! 아, 토모히사도 고생 많았어.”
류지와는 달리 산뜻하고 간결한 인사에 토모히사의 얼굴에 일순 ‘섭섭함’이라는 감정이 스쳤다 사라졌다. 하지만 마이는 기어이 자신을 껴안는 데 성공한 유우타를 신경 쓰느라 그 표정을 본 것은 토모히사의 옆에 있던 류지와 마이를 품에 안고서 토모히사를 견제하던 유우타 뿐이었다. 토모히사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의 편린을 읽은 유우타는 소악마를 닮은 미소를 지으며 보란 듯이 더욱 세게 마이를 끌어안았다.
“그런데 마이, 더워 보이는데 괜찮아?”
“에에?!? 마이마이 정말이야?!?!?”
그 일련의 행동을 웃으며 바라보던 토모히사가 돌연 마이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더위로 붉어진 얼굴과 평소와 달리 유우타를 마주 안지도 않은 채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을 본 탓이었다. 그 말에 화들짝 놀라 마이에게서 떨어진 유우타는 걱정스런 얼굴로 마이의 얼굴을 이모저모 뜯어보기 시작했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마이마이, 미안해!!!”
“ㄴ, 난 괜찮아!! 유-타가 왜 미안해! 아픈 것도 아니고, 난 정말 괜찮아.”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이가 웃자, 유우타가 글썽이는 목소리로 마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한 번 마이의 품에 달려들었다. 물론 그 직전, 토모히사가 단호한 손길로 그 둘 사이를 막으며 마이를 끌었다.
“유우타, 그렇게 다시 안으면 마이가 곤란하지 않겠어?”
“‥아니, 난 그렇게 곤란하진‥”
“미안해, 마이마이!!!”
두 눈을 굴리며 작금의 상황을 살펴보던 마이는 이내 한숨을 쉬며 제 어깨를 잡고 있는 토모히사의 두 손을 톡톡 가볍게 쳤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한 왕자님의 배려는 때론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어서 더욱 기댈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 이렇게 스스로 밀어낼 수밖에.
“토모히사,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난 아픈 게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걱정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나저나 세 사람 모두 막 스케줄 끝낸 거 아니었어? 피곤할 텐데 이제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응? 우린... 풋! 응, 조금 피곤한 것 같네~”
평소 그들에게 보이는 친근한 동료 혹은 친구의 모습이 아닌 ‘선배’의 얼굴을 한 마이가 한숨 쉬듯 걱정을 내뱉었다. 그 말에 류지가 고개를 기울이며 반론하려 했지만, 곧 토모히사와 마이를 번갈아 보더니 의뭉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은 ‘너무’ 피곤해서 빨리 쉬어야겠으니 먼저 들어간다며 토모히사를 둔 채 발걸음을 가볍게 옮겼다. 저만치 가는 류지의 손엔 익숙한 로고가 박힌 종이백이 들려 있었다.
류지가 걸어가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토모히사가 마이에게 시선을 돌리니 여전히 ‘선배 모드’인 마이가 팔짱을 끼고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강경한 눈빛으로 ‘너도 빨리 류지와 함께 돌아가서 컨디션 관리를 해라.’라고 말하고 있는 마이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을 알아서, 토모히사는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마이에게 종이백을 건넸다. 종이백엔 마이가 유우타에게 건네준 종이백과 같은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엣?"
갑작스레 자신에게 들이 밀어진 종이백에 당황한 마이가 얼빠진 소리를 내자 토모히사가 낮게 웃었다. '선배'인 마이의 모습이 이렇게 갑자기 풀리는 순간은 역시 언제 봐도 귀여웠다. 본인은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 그녀를 골리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물론 대부분은 도리어 마이에게 혼나기 일쑤지만.
“저번에 선물해준 ‘크렘 브륄레(creme brulee)’에 대한 답례야. 매번 마이에게 고마워하고 있어.”
“아? 으응, 고마워…"
얼떨떨한 표정으로 종이백을 건네받은 마이가 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키타코레, 내지는 류지에게 한 명의 팬으로서 디저트를 선물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렇게 답례를 받은 일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건 대체 언제 산 거야? 방금까지 스케줄이 있었던 거 아니었어? 게다가 에클레르(éclair)라니…“
마이가 종이백과 토모히사를 번갈아 보며 물었지만, 토모히사는 후후 웃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답을 주진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우타는 입을 비죽 내밀며 토모히사를 흘겨보았다. 어제 류지와 메일을 주고받았던 유우타는 오늘 키타코레가 스케줄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이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듯 토모히사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차라리 말해버릴까- 싶다가도 그러면 너무 유치해 보일 것 같아서 유우타는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지금도 마이에겐 '어린 남동생' 취급을 받고 있는데, 더 어려지는 것은 유우타 쪽에서도 사양이었다.
"그렇게 미안한 표정 짓지 않아도 돼. 마이는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었는걸. 아니면, 다음에 같이 디저트 먹으러 가지 않을래?"
"응?"
그리고 유우타는 곧 자신의 생각을 후회했다. 유치한 취급을 받더라도 말했어야 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마이는 유우타가 어떤 행동을 해도 유치하다거나 어리다곤 생각을 안 하고 그저 귀여워했을 텐데! 마음이 약해진 마이를 노려 은근슬쩍 데이트 신청을 하는 토모히사를 보며 유우타가 이를 갈았다.
"응, 알았어."
평소라면 곤란한 표정을 짓거나 뜸을 들였을 마이가 너무 상쾌하게 대답을 하자, 유우타도, 막상 데이트를 신청한 토모히사도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음 주 수요일이 키타코레 스케줄이 비는 날이지? 나도 다음 주는 한가하니까, 그때 가면 되겠다. 류지는 어디가 좋대? 프랑스? 이탈리아? 아니면 일본?"
그러나 이어진 마이의 말에 긴장했던 유우타가 당황하는 눈빛으로 마이를 바라보았다. 거기서 왜 류-쨩이 나오는 거야, 마이마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유우타와 달리 토모히사는 마이가 자신의 '데이트 신청'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깨닫곤 허탈한 표정을 짓다 이내 큰 소리로 하하 웃으며 그녀가 가고 싶은 곳으로 정하라고 했다. 유우타만 멍한 표정으로 무슨 일인가 머리를 굴리다, 마이가 이것을 '답례'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주 조금, 에클레르(éclair)의 1% 지분만큼 토모히사를 동정했다.
"마이마이!! 나도 마이마이랑 같이 디저트 먹고 싶어~~!"
"정말~? 그럼 이번 주말에 오랜만에 누나랑 데이트할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유우타는 아무리 불쌍하더라도 제 연적의 행동을 눈앞에서 마냥 지켜볼 성인(聖人)은 아니었다. '귀여운' 유우타가 디저트를 먹고 싶다 조르자, 마이는 곧바로 표정을 흐물거리며 비어있는 손으로 유우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본의 아니게 토모히사에게 의문의 1패를 안겨 준 마이였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이제는 유우타의 팔짱을 끼고선 천연덕스럽게 토모히사에게 숙소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가 토모히사를 바라보는 틈을 타 유우타가 악동 같은 웃음을 지으며 혀를 빼꼼 내밀었다. 스스로 보석을 놓아버린 대가는 가차 없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은 토모히사가 마이의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with. 키타카도 토모히사 . 아슈 유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