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스토리 _ 넬
한적한 리프레 마을 외곽의 작은 오두막. 정원도 없이 홀로 오도카니 서 있는 그 집은 외관만큼 내부도 보잘것없었다. 거실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좁은 거실 하나, 그 옆에 작은 부엌과 작은 식탁, 그리고 침대와 책상과 책장 한 개만으로도 꽉 차는 침실 하나. 게다가 꼭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만 갖추고 있어서 살풍경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만약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대로 전부 사들여 꾸며 놓았다면 안 그래도 협소한 공간이 말 그대로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비좁게 느껴졌을 것이었다. 이곳은 그런 집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집에 거주하고 있는 넬리는 그런 점들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그녀는 이 조그만 주택을 매일 성심껏 청소하고 사뭇 소중히 다루었다. 그녀의 첫 독립의 기념비적인 터이기 때문일까, 넬리는 이 오두막에 대해 보통 이상의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폐쇄적인 장소를 선호하는 그녀의 취향에도 꼭 맞아, 거실에 놓인 싸구려 1인용 소파에 앉아서 바깥을 내다볼 때면 이 작은 공간이 너무도 아늑하게 느껴졌다.
따스한 늦은 오전. 남향을 바라보는 거실 창문으로 눈부신 햇빛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넬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 파랑새가 다녀간 참이었다. 협소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부엌에 서서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찬장들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넬리는 보울을 네 개 꺼냈다. 큰 것과 중간 것 두 개, 그리고 손잡이가 달린 가장 작은 것이었다. 여기에 각각 다른 재료가 담길 예정이었다. 그리고 계량컵과 저울을 비롯한 각종 소도구들을 작업대 위에 늘어놓았다. 결코 충분치 못한 그녀의 활동영역이 주방도구들로 가득 차 한층 더 줄어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평소에도 자주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요리를 하면서 식탁까지 작업대로 사용하는 일은 흔하고도 흔했다.
가장 먼저 직무를 개시한 것은 저울이었다. 그녀는 밀가루와 코코아 파우더, 초콜릿, 설탕, 그리고 버터를 꺼내 무게를 쟀다. 그리고 초콜릿과 버터는 방금 전 꺼낸 가장 작은 보울에 넣어 두고 밀가루와 코코아 파우더를 체에 치기 시작했다. 그 아래에는 중간 보울을 받쳐 두고 있었다. 가루들이 박자를 맞춰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경쾌했다. 설탕은 반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컵에 담아 두었다.
그 다음에는 계란을 세 개 꺼내, 보울에 하나씩 깨 넣었다. 다만 흰자는 가장 큰 보울로, 노른자는 하나 남은 중간 보울로 분리한 채였다. 그녀는 불 위에 물을 담은 작은 냄비를 올려놓고 거품기를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노른자를 한번 살짝 풀고, 설탕 반절을 부어 빠르게 젓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탕이 녹고 노른자의 색이 기다리고 있던 대로 연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거품기를 놓고 다음 작업으로 옮겨 갔다.
조금 전 불 위에 올렸던 냄비가 팔팔 끓고 있었다. 넬리는 냄비를 불에서 내리고 뚜껑을 연 뒤 손잡이가 달린 작은 보울로 그 위를 덮었다. 수증기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보울 손잡이를 꽉 잡고 그녀는 빠르게 녹아 가는 초콜릿과 버터를 조심스레 주걱으로 섞었다. 절대로 지나치게 높은 온도에 도달해서는 안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되기 전에 전부 제대로 녹아 섞여 주었다.
그녀는 다시 노른자가 든 보울을 끌어당겼다. 젖은 행주를 식탁에 깔고 그 위에 보울을 올려놓았다. 이렇게 하면 세게 휘저어도 보울이 움직이지 않아 편했다. 따뜻한 액체가 된 초콜릿과 버터 혼합물을 그녀는 조금씩 노른자에 부으며 거품기로 빠르게 저었다. 이 과정에서는 노른자가 초콜릿의 온도에 익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무사히 하나가 된 노른자와 초콜릿 위에, 아까 전 체 쳐 두었던 가루들을 쏟아 넣었다. 묽던 반죽이 순식간에 되직해졌다. 가루가 습기를 머금고 뭉치지 않도록 그녀는 조심해서 반죽을 섞었다.
이제 머랭을 만들 차례였다. 그녀가 지금까지 한,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하는 일들 중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쉬운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흰자 거품이 단단한 뿔을 세울 때까지 거품기로 있는 힘껏 쳐대는 수밖에. 그녀는 결연한 눈빛으로 새 거품기를 꺼내들고 보울 앞에 섰다. 오븐을 켜는 것도 물론 잊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그 작업을 엄숙하게 시작했다.
마음에 들 만큼 쫀쫀한 흰색 거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한겨울에 등줄기에 땀이 맺힐 정도로 팔이 빠지게 저은 결과, 생각보다 이르게 예쁘고 매끄러운 뿔을 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완성된 머랭을 반씩 나누어 노른자 보울에 넣고 빠르게 섞었다. 오븐이 예열 완료를 알리는 딩동 소리를 울렸다. 둥근 팬에 반죽을 부어 한번 탕 쳐 준 뒤, 그대로 오븐 안에 밀어 넣었다. 타이머는 40분이었다.
넬리는 침대에 누워 피로를 풀었다. 침실까지 흘러들어오는 맛있는 냄새가 기분 좋았다. 조바심 쳐야 할 일은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케이크가 다 구워질 즈음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고, 그 뒤에는 천천히 몸을 씻을 생각이었다. 그러고는 고심해서 옷을 고르고, 갈아입고, 단장을 하겠지. 서두를 필요 하나 없었다. 시간은 지금도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파랑새가 알려 준 오후 4시는 아직도 한참이었다. 행복하고 나른한 그녀의 낮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 * *
1월의 어느 날. 헬리시움에는 눈이 내렸다. 바닥에 곱게 내려 쌓인 눈이 햇빛을 반사해, 성채의 대리석 외벽이 희게 반짝였다.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이라도 있었다면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을 돌아다니는 생명체라고는 주변을 순찰하는 스펙터들밖에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헬리시움과 폭군의 성채는 부족함 없이 아름다웠다.
물론 그의 성채가 우뚝 솟은 거대한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 따위, 매그너스에게는 본래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성채가 자신의 집으로서의, 그리고 요새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느냐뿐이었다. 그와 더불어 주변 환경 또한 아무래도 좋았다. 무모한 모험가들이 멋모르고 쳐들어왔다가 매그너스를 만나기도 전에 스펙터들에게 찢겨 온 바닥에 피를 뿌려 놓았든, 트레글로의 실험 잔해가 뒷마당에 산을 이루든, 어쨌든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제 간만에 벨데로스 녀석에게 대청소를 시켰더니 성채 안팎이 훤해 기분이 좋았다. 매일매일 그를 죽이러 달려오는 모험가들도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굳이 부득부득 죽기 위해 굴러온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가능한 만큼은 벨데로스에게나 맡겨 둘 작정이었다. 때문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않는다면, 지금 정확히 심장을 관통당한 이 섀도어가 내일까지는 마지막 도전자가 될 터였다. 매그너스는 힘 있게 검을 뽑아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그의 얼굴에 튀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슥 훔쳐내고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이제 슬슬 준비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욕실이었다. 먼저 갑옷을 벗어 전용 세척기에 넣었다. 단 한 벌뿐인 이 갑옷은 무척 단단하고 희귀한 소재로 만들어져 있는데다 그 자체로 강력한 보호 마법을 띠고 있어 몹시 값비쌌다. 당연히 다른 그 어떤 갑옷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다. 지금처럼 세탁을 해야만 하는 때에도 이렇게 마법 기계에 넣어 단숨에 세척하고는 필요할 때 다시 걸치는 것이었다. 그의 전쟁에 가까운 생활상 덕택에 매일같이 세척기에 들어가는 갑옷이었지만 흠집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매그너스는 순금으로 도금되어 번쩍이는 수도꼭지를 돌렸다. 샤워기에서 힘차게 물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견딜 수 있는 최대한도로 뜨겁게 튼 물이 얼굴과 손발에 묻은 시뻘건 액체를 빠르게 씻어 나갔다. 아무리 익숙해져 있어도 남의 피를 뒤집어쓰는 것은 고역이었다. 끈적한데다가 비린내까지 풍긴다. 거기다 보통 땀까지 섞이게 마련이었다. 씻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그와 같은 상황에 빠진다면 반드시 샤워를 원하게 될 것이라고 매그너스는 생각했다.
비누로 온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씻은 뒤, 그는 샴푸를 손에 짰다. 예전에는 귀찮은 나머지 비누로 전부 해결해 버리는 때도 자주 있었으나 요즘은 그러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로 인해 특별히 바뀌는 것은 물론 없었다. 허나 게으른 버릇 하나를 고친 것만으로 어쩐지 보다 자기 자신에게 신경을 더 쓰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나오자 세척기에 넣어 두었던 갑옷은 이미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채 건조까지 완료되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그는 도로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에게 평상복이란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언제고 습격을 대비해야 하는데다 불시에 임무가 주어지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무인(武人)으로서, 특히 폭군 매그너스로서의 삶은 그러한 것이었다. 불만은 없었으나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오늘 같은 날마저 맵시 있는 차림새를 하지 못하고, 성채에 처박혀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옷을 입어야 한다는 점이 서글펐다. 그러나 잠시 후 매그너스가 만날 누군가는 그의 무장을 매우 좋아했다. 이 때문에 약간은 위안이 되었다.
그는 문득 허기를 느꼈다. 격렬한 전투 직후였으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참아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를 먹게 될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달콤한.
마지막으로 체크해야 할 것은 거울 속이었다. 변장을 위해 갑옷 위에 커다란 후드가 달린 헐렁한 로브를 걸치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꼼꼼히 살폈다. 만에 하나라도 완벽하지 못한 매무새를 보이게 될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외모에 신경 쓰게 된 최근 자신의 행태가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였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그럭저럭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후 3시 40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사를 마친 매그너스는 저 멀리 보이는 차원의 문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소파에 앉아 현관문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넬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 작업대 위에 오전에 만들어 둔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케이크를 두 조각 잘라 식탁에 올렸다. 한 조각은 이쪽에, 다른 한 조각은 저쪽에. 그녀와 다른 누군가의 몫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루설탕을 케이크 표면에 가볍게 뿌려 장식했다.
찬장에는 우유가 담긴 저그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귀여운 무늬가 그려진 법랑 밀크 팬을 꺼내 우유를 따랐다. 그리 크지 않은 팬은 금세 꽉 찼다. 그리고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58분. 적절한 시간이었다. 불 위에 올라간 냄비는 오래지 않아 거품을 일으키며 끓어올랐다. 잠시 딴생각 중이었던 넬리는 허둥지둥 팬을 내렸다. 가지고 있는 머그컵이 몇 개 되지 않아 어떤 컵에 따르면 좋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불행일까 다행일까. 그녀는 유일하게 똑같은 짝이 하나 더 있는 컵에 데운 우유를 따랐다. 한 잔은 조금 많이, 다른 한 잔은 조금 적게. 방금 전 놓아 둔 케이크 접시들 옆에 하나씩 진열하니 제법 잘 어울렸다. 오후 4시, 뻐꾸기시계가 울었다. 그리고 조금 전 그녀가 하염없이 바라보던 현관의 초인종도 함께 울었다.
“어서 오세요.”
낮고 따스한 목소리는 침착하기 그지없었지만 얼굴에 떠오른 찬연한 기쁨은 감출 수 없었다. 그가 왔다. 기다리던 매그너스가.
“잘 지냈나.”
그의 짧고 간단한 인사였다. 허나 희미하게 떨리는 음성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거기에 담긴 감정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와 그녀가 만나지 못한 지 오늘로 딱 보름이었다. 연인인 두 사람이었지만 근래에는 매그너스의 불규칙한 일정 때문에 만날 수 있는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이 훨씬 많았다. 요사이 유독 커진 메이플 연합과 검은 마법사 일당 사이의 불온한 긴장감도 거기에 한몫 보태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연인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간의 애달픔과 그리움이 한 순간에 녹아내렸다.
두 사람은 꼭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함께 식탁에 가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우유와 하얀 설탕이 뿌려진 초콜릿 케이크에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풍겼다. 포크로 힘을 주어 케이크를 찌르자 부드러운 저항감과 함께 한 입 크기로 잘린 조각이 포크에 얹혔다. 그와 그녀는 동시에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
“!!”
그리고 역시 동시에, 머리 위에 기분 좋은 느낌표를 띄웠다.
“맛있네, 이거.”
“그쵸? 다행이에요. 이따 남은 건 가지고 가요.”
“만든다고 너무 고생한 거 아니냐. 대낮부터.”
“고생은 매그너스가 다 했죠. 바쁜데 저 만나러 온다고.”
넬리는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볼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매그너스는 그런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른 때의 그녀도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기뻐하고 있을 때의 넬리는 세상 그 누구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어여쁜 모습이었다. 그는 그녀의 뺨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렸다. 말랑했다. 그의 것과는 다르게. 그리고 고작 이 행동만으로도 화들짝 놀라 부끄러워하는 넬리가 거기 있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 말이야.”
잠시 뜸을 들였다. 그녀처럼 수줍음을 타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역시 그에게도 이런 말은 겸연쩍었다.
“나랑 같이 있을래?”
처음도 아니건만 항상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매그너스는 얼굴을 붉히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 꼴사나운 모양새를 그녀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곧 터질 것처럼 달아오른 넬리의 얼굴은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녀 같은 어린 소녀가 아니라 건장한 사내였다. 무엇보다 그녀 앞에서만은 언제나 능숙하고 멋진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
“……네.”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가 간신히 귓가에 걸렸다. 넬리는 이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얼굴을 들어 그 귀여운 표정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끝까지 그녀는 그로 하여금 애를 태우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조급하게 굴 필요는 전혀 없었다. 어차피 오늘 밤 마음껏 보게 될 터였다. 지금보다 더 곱고 예쁜 그녀의 자태를.
매그너스와 넬리는 손을 잡고 작은 집을 나섰다. 이곳 리프레에서 헬리시움에 있는 그의 성채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다. 물론 날아서 갈 수만 있다면 편하고 빠르게 주파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높은 곳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허나 그도 그녀도 이를 불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이 순간이 그 무엇보다 즐거웠다. 어느 겨울의 늦은 오후,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건조한 바람 속에 흩어졌다.
with. 매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