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왕자님 _ 휘월
아이네에게 월이란 독특한 사람이다. 그동안 아이네가 보아 온 월은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없었다. 게다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는 경우가 없었다. 그와 그녀가 만났던 초반, 아이네는 월에게 어떻게 보면 몹쓸 행동을 많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월은 매번 그린 듯한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네를 달래기 일쑤였다. 심지어 월, 자신이 아픈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곤란한 투정을 부리는 아이네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했다. 혹자가 본다면 월이 아이네에게 사심이 있거나, 아니면 그녀 자체가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네가 여태껏 관찰한 월이라는 사람은 보이는 모습과 달리, 딱히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삭막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집에 찾아오고, 매번 웃으면서 그를 챙기는 일련의 행동들이 특이하다고 느꼈다.
“워‥ 워-르.”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아이네가 끙끙대며 맞은편에 앉아있는 월을 불렀다. ‘키즈키’라는 부르기 쉬운 이름이 있음에도 굳이 ‘월’의 이름을 부를 거다 고집했던 아이네는 그 이후 매번 힘겹게 월을 부르곤 했다. 그때마다 월은 예의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네 스스로가 자신의 발음에 만족할 때까지 기다려주곤 했다. 이번에도 자신을 부름에 아이네의 눈을 마주치며 기다려주던 월은 곧 뿌듯한 표정을 짓는 아이네를 보며 속으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워-르는 주말에 뭐하면서 보내?”
“네? 저요? 평소처럼 아이네 씨에게 들리죠?”
그리고 아이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월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에 당황한 것과 달리 월의 대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을 들은 아이네 또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대학생이라던 월은 지금은 방학이라지만, 학기 중에도 꾸준하게 그를 찾아왔다. 어떻게 보면 투철한 직업정신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 그럼 여기 오지 않는 날은 뭐 하면서 보내? 아니, 날 만나기 전엔 뭐 하면서 보냈어?”
당황한 듯 평소보다 빠르고 톤이 올라간 아이네의 목소리를 감상하며 월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에 땋아 내린 머리카락이 그녀의 고개에 따라 흔들렸고, 아이네는 침을 꼴깍 삼키며 차마 월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 잔상을 두 눈으로 쫓았다.
“음… 이전에는… 디저트 가게들을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아! 워-르는 디저트를 좋아하는 거야?”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한 대답이었지만, 그저 월의 대답을 들었다는 생각에 아이네는 그 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연이어 아이네가 들뜬 목소리로 디저트를 좋아하냐 묻자 월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매번 웃기만 할 뿐, 좀처럼 다른 표정을 보여주지 않던 월이었기에 아이네는 월의 색다른 표정을 자신이 이끌어냈다는 것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월이 두 번째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다.
“이번 주말엔 워-르가 좋아하는 가게에 가자.”
“제가 좋아하는… 가게요?”
10대 소년처럼 말간 표정으로 ‘데이트’를 신청하는 아이네에 평소라면 웃으며 승낙했을 월이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물끄러미 아이네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아이네가 불안한 표정으로 월을 바라보았다. 거절의 대답이 돌아올 지도 모른다는 가정보다 더 원초적인 무언가가 그의 신경을 불안하게 자극했다.
“…워-르…?”
“아, 죄송해요. 잠시 다른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네 씨. 외출, 괜찮으시겠어요?”
흐려졌던 동공에 다시 초점이 잡힌 월은 대답 대신 근본적인 문제를 꼬집었다. 대인기피증 증세를 보이는 아이네는 자신의 집 앞을 산책하는 것도 힘겨워하던 사람이다. 요즘에서야 인적이 드문 바닷가나 공원도 곧잘 거닐곤 한다지만, 월이 관심을 보이는 주제에 한순간 그는 자신의 증상에 대해 망각하고 말았다.
“아……”
“제가 평소에 가던 가게에서 디저트를 사 올게요. 주말에 같이 먹어요.”
“미안해….”
“전 괜찮아요. 조용한 곳이니까, 다음엔 같이 가요. 분명 아이네 씨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아이네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자 월이 차선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이네가 여전히 비 맞은 강아지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자 월은 손을 뻗어 그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그를 위로했다. 아이네는 자신이 모르는 평소의 월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거지만, 월이 좋아하는 음식을 알게 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응, 다음엔 꼭 같이 가자.”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에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며 월과 아이네는 마주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아이네의 마중을 받으며 돌아가는 길, 월은 언제 웃었냐는 듯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선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은 옛날부터 ‘그녀’의 손에 이끌려 의무적으로 디저트 가게를 다니던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된 것뿐인데, 아이네는 자신이 디저트를 좋아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저 의무감으로 먹던 것이었는데, ‘그녀’가 없는 지금도 계속 디저트를 찾는 자신. 그렇다면 자신은 디저트를 좋아하는 건가? 스스로도 답을 알 수 없음에 월의 얼굴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 고민은 주말의 아침, 디저트 가게를 들릴 때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바치 디 다마(Baci di Dama). 자신에겐 매번 다른 디저트를 먹으라고 했으면서 ‘그녀’는 항상 이것만 찾았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한 번도 못 먹게 했었던. 이유를 알지도 못하면서 월은 ‘그녀’의 말이기에 무작정 따랐다. 그 금기는 현재까지도 이어져서 여러 가게를 거치면서도 월은 바치 디 다마(Baci di Dama)엔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지금까지는.
“…와 이걸로 포장해주세요.”
바치 디 다마(Baci di Dama)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곧았지만, 그녀의 동공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혼란으로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왜 하필 이걸 골랐는지는 월 스스로도 몰랐다. 하지만 선택을 돌이키기엔 이미 직원이 그녀의 말에 속포장을 시작한 뒤였다. 물론 다른 디저트를 고를 수도 있었지만, 대신 월은 직원에게 선물용으로 예쁘게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포장된 상자를 건네받자마자 월은 황급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태연하게 행동하긴 했지만, 부모님 몰래 잘못을 저지른 아이마냥 월은 손에 땀이 차고 심장이 거세게 쿵쿵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와의 금기가 ‘그’로 인해 또 하나, 깨졌다.
“ㅇ, 워-르, 좋은 점심이야!”
“좋은 점심이에요~ 아이네 씨. 그런데 설마 아침 거르신 건 아니죠?”
월이 아이네의 집에 들어서자 현관에서부터 그녀를 반기는 아이네의 모습에 월이 작게 웃었다. 겉옷을 벗으며 거실로 들어선 월은 요전번부터 주말을 고대하는 아이네를 떠올리곤 반농담조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정곡을 찌른 건지 순간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아이네의 모습에 월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이네 씨… 매번 말하지만, 식사 거르는 건 건강에 좋지 않아요. 일단 식사부터 하고 디저트를 먹기로 하죠.”
“응, 알았어!”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월에게 혼나는 건 아닐까 안절부절못하던 아이네는 김빠진 웃음을 내뱉으며 자신에게 디저트가 들어있는 상자를 건네는 월의 모습에 금세 밝아졌다. 방긋방긋 예쁘게 웃으며 상자를 티 테이블 위에 올려둔 아이네는 월을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월과 함께 빨리 디저트를 먹겠다는 집념으로 흡입에 가까운 식사를 끝냈건만 식사 후 바로 디저트를 먹으면 속에 좋지 않다는 월의 말에 아이네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워-르는 가끔 보면 사람을 잘 다루는 것 같아.”
“그런가요? 분명 기분 탓일 거예요.”
후후 웃으며 책장을 넘기는 월의 모습에 아이네가 심통 난 얼굴로 자신이 읽고 있던 책으로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1시간여 정도가 지난 뒤에야 아이네는 월이 선물해준 상자의 포장을 뜯어볼 수 있었다. 상자 속엔 포장된 앙증맞은 쿠키와 튜브 모양의 과자가 각각 들어있었다. 아마도 이탈리아 디저트인 듯 포장지엔 유려한 글씨체로 이탈리아어가 적혀있었다.
“워-르, 이건 이름이 뭐야?”
“그건 카놀리(Cannol)에요.”
먼저 튜브 모양의 과자를 하나 꺼내어 한 입 베어 문 아이네는 월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리코타 치즈에 얼굴이 환하게 바뀌었다. 맛있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카놀리(Cannol) 하나를 빠르게 다 먹어치운 아이네는 샌드 모양의 앙증맞은 쿠키로 관심을 돌렸다.
“그럼 이건?”
“그건…… 바치 디 다마(Baci di Dama)에요.”
“Baci di Dama-? 귀엽고 예쁜 이름이네.”
쿠키를 들어 올려 요리조리 살펴보던 아이네는 월의 설명을 듣자 고개를 들어 눈가를 접으며 예쁘게 웃어 보였다. 과거, 연예계에 몸 담갔던 시절 지나가듯 배웠던 이탈리아어를 떠올리며 쿠키를 입 안에 넣은 아이네는 이름처럼 달콤한 디저트를 음미하며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름 때문인가, 괜히 월의 입술에 눈길이 가는 것 같…까지 생각한 아이네는 순간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깨닫고선 저 혼자 화드득 놀라 쿠키를 급하게 삼켜버렸다.
“흡! ‥읍, 흐으읍…!”
“아이네 씨, 괜찮으세요?!”
“콜록콜록- 으응… 난 ㄱ, 괜찮아. 고마워, 워어르…. 그런데 이 쿠키, 워-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워-르가 생각나는 디저트랄지‥!”
“…네? 저랑‥요…?”
사레가 들린 아이네에게 월이 급하게 홍차를 건네주고 걱정하자, 아이네는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자신이 그녀를 상대로 ㅅ‥ 성적인 생각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을 뿐인데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아이네가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나 자신!
평소답지 않게 너무 들뜬 것 같다고 자책하고 있던 아이네는 자신의 말을 들은 이후로 급격하게 얼굴이 어두워지는 월을 보며 혹시 자신이 한 말 중에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지 되뇌기 시작했다. 하지만 월의 기분을 저조하게 할 만한 말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어, 아이네는 혹시 자신이 한 생각을 월에게 들켰나 지레 찔려서 혼자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그‥! 다른 의미가 아니라…! 부드럽고 단맛이 워-르랑 어울린달지…! 그, 평소에도 워-르는 상냥하고! 또 부드러우니까…! 절대 이상한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네?”
한편, 자신과 바치 디 다마(Baci di Dama)가 어울린다는 아이네의 말에 ‘그녀’와의 나날을 회상하던 월은 점점 울상으로 변해가면서도 그녀의 기분을 달래주려는 아이네 덕분에 추억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대체 무슨 오해를 한 것인지 아이네의 얼굴은 숫제 울기 직전이었다. 평소의 월이라면 그런 아이네를 보며 금방 달래주었겠지만, 지금의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보여 월은 아이네를 달래는 대신 소리 내어 웃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쿠키를 하나 집어 먹었다. 혀끝에서 맴도는 초콜릿의 단맛과 헤이즐넛 향은 여태껏 먹어보지 않은 게 후회스러울 정도로 제법 그녀의 취향이었다. 그녀는 단지 습관 혹은 지나간 과거를 애도하기 위해서 여태껏 디저트를 찾아왔다고 생각해왔는데, 꼭 그런 이유만으로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이네 씨, 저는 확실히 디저트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라고 생각… 에?”
여전히 횡설수설하던 아이네가 말을 멈추고 입을 헤- 벌리자 월이 웃으며 바치 디 다마(Baci di Dama)를 하나 집어 들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갑작스레 입 안으로 들어온 디저트를 받아먹던 아이네는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닫고는 입으로 어버버 소리를 내었다. 그런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며, 월은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아이네와 디저트를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with. 키사라기 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