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_ nelyu
내 룸메이트는 약간 유별난 여타 유학생들과 다를 것 없는 한국인이었다. 그녀는 수사에 관한 드라마를 무척이나 좋아했으며 현실의 살인사건에도 흥미를 보이는 여자였다. 그 때문에 셜록 홈즈에 대해 무척이나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 어찌 되었든 그런 것에 관심을 갖고는 있다고 해도 결국 그녀는 정말 평범한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이었고, 전공도 그것과는 전혀 다른 사진전공이였다. -어쩌면 시체나 사람이 죽는 순간을 찍고 싶어 하는 또라이였는지도 모른다.- 영국에 막 도착한 그녀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유명한 존 해미쉬 왓슨의 셜록 홈즈에 관한 블로그였는데, 그것이 그녀가 베이커스트리트의 221B 근처로 집을 구하게 된 계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내가 세 들어 사는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 허드슨 부인이 운영하는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영국 그 수많은 땅덩어리 중 내가 사는 이 런던의 베이커스트리트는 혼자서 벌어 살기엔 무리가 있었고, 덕분에 나는 곧 나갈까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이곳은 단 한 시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교통편상으로 상당히 유리한 지형에 있었고, 나는 그 이득을 버릴 수 없어 룸메이트를 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것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가 내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에서 왔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그녀에게는 그다지 정상적이지 않은 매운맛 중독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로맨스 드라마는 모두 섭력하고 심지어 소설과 만화조차 다 읽은 로맨스 마니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범죄수사 극에 기묘한 관심을 보이기에 내가 그녀에게 콧방귀를 뀌며 이야기해줬지.
"흥, 그렇다면 잘 왔어. 이 살인사건의 중심지 베이커스트리트."
물론 그녀가 일부러 발품 팔아서 내가 올려놓은 룸메이트 모집 광고까지 찾아서 이곳에 온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이후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옆집의 셜록 홈즈의 집을 뺀질 나게 드나들었다. 그러고 나면 그녀에게서 나는 퀴퀴한 먼지 냄새와 옷깃에 스민 담배 냄새가 셜록 홈즈의 생활을 잘 확인시켜주었다. 딱히 알고 싶은 부분은 아니었지만서도.
간혹 가서는 셜록 홈즈가 그녀와 나의 집에 쳐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솔직히 난 저 남자에 대해서는 나의 유일하신 신께 맹세코 단 한 번도 알고 싶었던 적이 없었으나, 그녀의 입은 정말이지, 모터를 단 듯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마리아! 이것 봐, Mr. 셜록이 해결한 사건! 정말 놀라워! 대단해!"
내가 대충 고개를 주억거려주면 그녀는 신이 나서 흉물스런 사진을 내 면전의 코앞까지 들이대며 떠들어대었으니, 뭐 말은 다 했지. 여기까지만 보면, 그녀는 상당한 추리물 덕후인 것을 알 수 있었으나, 그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셜록 홈즈를 열렬히 좋아하는 여성이었고, 그녀는 남자의 세세한 부분까지 떠들며 멋지다 칭찬하곤 했다. 덕분에 정말 나는 그의 취향까지 알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그 긴 롱 코트를 즐겨 입는지와 커피에 설탕을 얼마나 넣는지 따위조차 알게 되었으니…….
아무튼 내 쓰잘데기없는 신세한탄을 이쯤 해두고, 그녀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자면 그녀는 정말 지독히 열렬한 추리물 마니아이자 극악무도한 셜록 홈즈를 사랑하는 광팬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느껴지는 그의 사이코 패스적인 요소들조차 그녀는 사랑했다. 아, 그러고 보면 팬이 아니라 독실한 광신도일지도 모르지. 솔직히 나는 일하고 나서 돌아오면 피곤에 찌들어 고향에서 사온 브랜드의 홍차를 적당히 블렌딩해 마시고 있으면, 곧 쇠가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요란스럽게 열렸고, 그녀는 날 듯 기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러면 뭐 그녀의 그 작고 작아서 그녀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 스콘으로 막아주고 싶은 입이 쉬지 않고 나불대었다.
사실 그녀와 살게 된 지가 거의 1년 정도 되어갔다. 그녀는 그중 하루도 거르지 않고 셜록 홈즈의 수사를 견학하곤 했는데 처음 몇 번은 거절도 당하는 듯했으나 곧 그녀의 놀라운 사진 기법이 통한 것인지 아니면 팬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들이대었겠지. 그녀는 Mr. 셜록을 도와 많은 사진을 찍어냈다. 솔직히 그가 아무리 똑똑하다더라도 사진은 있는 편이 낫지 않냐고 그의 친구 존 왓슨이 이야기해준 것도 있겠지.
그리고 거의 1년이 다 되어가고서야 알게 된 것이 있는데, 그녀는 시체를 본 첫날도 아무런 혐오감 없이, 오히려 스테이크를 잘 썰었다고 했다. 이건 내가 존과 친해지게 되고서야 듣게 된 이야기였다. 솔직히 나랑 살고 있는 친구도 싸이코패스였나 싶기도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는 싸이코패스라기보다는 그녀의 조국에서는 할 수 없는 스릴넘치는 행위들에 맛들린 듯 싶었다. 그나마 그녀가 얼마 후에 고향으로 돌아갈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나도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시체냄새는 나지않으며, 이제 곧 그녀가 찍은 그 많은 시체 사진을 보지않아도 되므로.
"나, 그에게 고백했어."
그리고 그녀는 고국에 돌아가기 일주일 전 셜록 홈즈에게 고백했다가 대차게 차였다고 했다. 그 일을 또 굉장하다고 장황히 설명해주는데, 그게 또 부산스러웠다.
"그러니까, 그는 내가 그에게 졸라대는 순간부터 알고있었대. 내 입술의 움직임과 제스처가 보였다나봐! 거기다가 내가 차려입은 옷까지! 내가 Mr.셜록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어! 역시나 대단한 천재구나 싶었더라니까! 반대로 눈썹의 움직임과 과장된 몸짓에서 내가 꽤 소심하다는걸 느꼈대! 그래서 내가 아마 떠나기 전까지 고백하지않을거라는걸 알았다나봐! 대단하지않아? 추리의 천재라니까!"
차였는데도 기뻐한다니, 우습기 그지 없다. 솔직히 이건 내가 다 슬플 지경이다.
"아쉽거나 슬프거나 하지않아?"
내 말에도 그녀는 역시 이해가 전혀 되지않는다는 표정이였다. 왜! 도대체 어째서?! 나는 결국 그녀가 행복한 얼굴로 떠나기 전까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생각해봐, 그 남자는 정말 관찰력이 뛰어나! 내 눈썹의 움직임조차 관찰해! 맥박조차! 난 그 모든게 너무 사랑스러워진 것 같아. 처음엔 팬으로서의 과한 열광이였는데 어느 순간 수사를 할때의 진지해지는 눈도, 빠르게 열정적인 말들조차 사랑스러워졌어! 마치 네가 만들어준 스콘같아! 네 스콘도 먹을 수록 사랑스러워졌거든."
그녀는 결국 돌아갈 때조차 그런 말을 남기고 갔다,
"나 정말 영국에 와서 좋았어! Mr.셜록과 Dr.왓슨을 만난건 행운이라고 생각해! 거기다가 마리아, 널 만난건 그 행운들 중 가장 큰 행운이야. 안그랬으면 내가 그 맛있는 스콘을 먹어볼 수도 없을 뻔 했잖아? 정말 기뻤어! 아, 우리 페*스북 친추 해놨지? 나 한국 돌아가면 스콘만드는 법좀 알려줘!"
그녀는 가기 전 내게 셜록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나 토해내더니 종국에 가서는 나에 대한 정과 스콘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솔직히 그 짧은 마디조차 너무나 예쁘게 느껴졌다. 다소 귀찮을 수도 있었으나, 그녀는 정이 넘치는 한국인 유학생으로서 너무 좋은 룸메이트였다. 생각하면 웃음이 날 정도로.
그리고 그녀가 돌아간지 이주가 될 무렵, 그가 찾아왔다. 그는 '셜록 홈즈'였다. 잘나가는 범죄 자문 탐정이자 내 룸메이트가 좋아했던 남자였지. 난 그를 별로 좋게 생각하진 않는다.
"혹시 시간이 된다면 몇마디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그것도 답지않게 정중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래. 이야기나 들어보자 싶어 안으로 들이니 그는 몇 번인가 주저하다 곧 빠른 어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건 자신이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게 된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 망할 남자는 어느새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의자에 제 엉덩이를 붙이고는 주절주절 이야기를 떠들었다. 또 더 웃긴 것은 마치 내가 오래 된 친구라도 된 양 말을 놓는다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큰 문제다. 난 이 남자가 무척이나 재수없고 싫었다. 잘난 듯 내 전 룸메이트의 사랑에 대해 나불나불 자랑하 듯 떠들어댄다니, 솔직히 그녀와 더 친분이 있는 나는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할 뿐이였다.
"솔직히 그녀를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네도 알지않나? 그녀의 성격은 너무 붙임성이 좋고 또 끈질기기도 하단 것은."
사실 그 성격은 '셜록 홈즈' 한정이었으니 내가 알고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셜록홈즈의 이야기때 빼고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먼저 다가가지도 않는데, 뭘 알겠는가. 그건 내가 본 그녀의 모습은 아니었다. 확실히.
"아, 알고는 있네. 그녀의 행동거지를 봤을 때 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겐 잘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이긴 하더군. 허드슨부인이나 존의 경우엔 그녀와 완전히 친해지기 위해 거진 한달을 먼저 말을 붙여야 했으니까."
뭐, 그렇지. 그렇기야 한데, 이걸 왜 말하는가 싶기는 하다. 굳이 알고싶은 내용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저 주절대는 입을 방금 막 구운 스콘으로 막아버리고 싶어지긴 했다. 그러고보니 데자뷰같다. 언젠가 그녀의 입도 이 스콘으로 막아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
"여하튼 내가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말이지. 실은 그녀에 대해 생각하다가 얼마전, 내 행동도 사랑에 빠졌을 때 하는 행동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특히 마인드펠리스에 그녀에 대한 정보가 빼곡하게 들어찬 방이 있다는걸 알게 된 순간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 당시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거든. 근데 그녀가 좋아하는 디저트의 종류조차 알고있었을 때는 할 말을 잃었다네. 처음엔 지우려고 했는데 다른 정보와는 달리 지워지지도 않더군. 그녀는 가끔 자네가 만들어준 스콘을 갖고오곤 했어. 내 입맛엔 그다지 맞지않았지만 그녀는 굉장히 좋아했어. 그래서 당연히 자네가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고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네."
아, 서론이 너무 길었다. 지금까지 본론-그러니까 스스로에 대한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서론에 불과했으며, 셜록 홈즈는 내게 다른 문제로 찾아온 것이다.
"혹시 자네, 그녀의 연락처에 대해 알고 있나?"
사람이 손발이 맞아야 사기도 친다고 했던가. 어째 이 둘은 전혀 맞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좀 귀찮은 일은 떠맡은 기분이다.
with. 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