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노기 _ nelyu
밀레시안은 사실 처음엔 소년에게 그다지 지대한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배신을 당해온 밀레시안의 과거 기억때문에라도 의심을 품었으면 품었지, 전-혀 관심이 아니었다고 밀레시안은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밀레시안은 자신이 가진 의심조차 일종의 관심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관심이란 정말 지극히 사소하고 사사롭다. 강가의 작은 돌멩이를 보고 이 돌멩이가 좋겠다! 하고 주워들어 물수제비를 하는 것 또한 돌에 대한 관심 혹은 강에 대한 관심이라고도 할 수 있고, 미움이니 뭐니 해도 그 또한 관심이다. 관심이란 무엇 하나 처음부터 큰 것이 아니었다. 점 하나가 선이 되고, 면이 되어 결국 도형이 되는 것. 또 그 도형이 점점 더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밀레시안은 언제부터 스스로가 그 소년에 대한 호감이 생긴지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간간히 떠오르는 것은 소년이 밀레시안에게 말할때의 톤이나 동경에 젖은 맑은 눈동자뿐이었다. 다만 그것이 소년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긴 시간 차곡히 쌓인 관심은 감정이 되어 넘실대는 파도처럼 휘몰아친다. 생각해보면 정말 별것 아니었다.
"알터, 이거 먹을래?"
온천 원숭이에게 줄 버터 비스킷을 왕창 사서, 그대로 원숭이에게 갖다 바쳤더니 주라는 물건은 주지도 않고 배만 채우곤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것에 짜증스럽게 가방 안에 가득 찬 비스킷을 보다가 문득 그를 보았을 뿐이다. 밀레시안을 보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아발론 게이트에 서서 문을 지키는 기사단의 소년. 이전부터 이상하리만치 밀레시안을 믿었으며, 신도에 가까운 충성스런 광팬이었던 알터를 보며 비스킷을 권유한 것이 소소한 관심의 시작이었다.
"네에?! 밀레시안님!! 정말 고맙습니다! 밀레시안님이 직접 만드신 쿠키라니…!"
밀레시안은 단 한 번도 직접 만든 쿠키라고는 하지 않았으나, 그냥 알터의 행복한 상상을 위해 말을 삼켰다. 왠지 저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뀌는 것은 그다지 좋지않았다. 오히려 미묘하게 기분이 나쁘면 나빴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까. 현재 에린의 울라 대륙은 수주 간 연일 이어지는 축제로 열띤 분위기를 이어갔다. 사실 축제라고 해봐야 다 거기서 거기였기에 크게 즐겁지는 않았지만 축제의 먹거리는 그 어떤 때보다 달고 맛있었다. 이벤트에서 주는 기념 케이크는… 생긴 건 조금 별로일지라도 확실히 달콤했다. 문제는 이 케이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고, 밀레시안은 금방 자신이 맡고 있는 기사단의 조원 아이들이 떠올랐다. 주면 좋아할까…. 뭐 사실 밀레시안에게 좋아할지 아닐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좋든 아니든 그냥 떠넘기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그 아이들은 떠넘기면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을 오랫동안 겪은 밀레시안은 상당히 잘 알고있었다. 그러고 보니 알터도 좋아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금방 저가 먹을걸 조금 줄까 하면 노려보다시피 하는 아벨린에 곧바로 생각을 접어야 했다. 밀레시안은 축제상인에게 구매한 케이크들을 가방에 넣고 -에린의 밀레시안들의 가방은 이상하리만치 크고 넓다.- 아발론 게이트로 향했다.
아발론 게이트는 인산인해를 이루던 축제와는 달리 사뭇 조용하고 한가롭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한산했다. 밀레시안은 고개를 돌려 기사단 아이를 보았다. 가장 먼저 기뻐하며 밀레시안을 맞이해주는 것은 역시나 카나였다. 이 고즈넉한 장소에서 몇 안되는 활기차고 주위 공기조차 떠들썩해지는 아이. 밀레시안은 카나를 보며 안부 인사를 하다가 곧 생각난 듯 가방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변형되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 잘 포장된 축제 기념 케이크를 꺼내 칼로 먹음직스럽게 조각 내 카나에게 주었다.
"기사단 애들이랑 먹으려고 가져와봤어."
밀레시안은 그러고 나서 아이들 하나하나를 전부 돌아보았다. 기뻐하는 아이들을 훑다가 곧 남은 케이크를 봤다. 이걸 어떡하지…. 모든 밀레시안들은 살이 잘 찌는 편이다. 평생 다이어트를 하고서 살아야 하고, 물 한 모금, 케이크 한 조각조차도 조심해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고로 밀레시안은 그 케이크는 많아봐야 한 조각 먹을까 싶고, 그렇다면 꽤 많이 남게 된다. 기사단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더 돌린대도 남는다. 망할 삼단 케이크. 그러다가 저를 향한 뚫릴 듯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 보니, 알터는 저 멀리서 어떻게 밀레시안을 알아본 것인지 -사실 알터는 언제나 알아보곤 한다.- 밀레시안을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밀레시안은 흠 하고 알터를 보다가 케이크를 보았다. 알터라면 먹지 않을까? 그런 김에 옆에 있을 아벨린도 회유해서 같이 나눠먹지, 뭐. 밀레시안은 알터가 있는 방향으로 여유롭게 걸었다.
솔직히 밀레시안은 꽤나 놀랐다. 아벨린이나 알터나 체형과는 달리 꽤 많이 먹는 편인 것 같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은 기사였고, 매일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근력도 근력이고 지구력도 장난 아닐 거였다. 당연히 먹는 족족 근육의 양분이 되어 뜨겁게 타올라 사라질 것이었다. 밀레시안은 수련은커녕 거의 놀다시피 하며 레벨을 올리고 나면 환생해버리는 본인을 생각해보았다. 절대 근력이나 지구력이 늘 수가 없었다. 느는 것은 환생 전 익힌 기술들과 그로 인한 기초체력 정도. 그러고 보면, 저를 보며 무슨 아이돌이라도 된 양 떠받들어주다시피 하는 이 소년도 저보단 근육이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케익의 맛을 음미하고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각했다. 본인이 꽤 탐미적으로 알터를 보고있었단 사실을. 그것도 알터와 눈이 마주친 후에야 자각했다.
"밀레시안님! 이 케이크 맛있네요! 전에 주신 버터비스킷도 맛있었지만!"
알터는 맑게 웃었다. 밀레시안은 저도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하지 못하던 것을 기억하는 알터가 꽤 신기했고, 또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기사단 아이들보다도 더 잘먹는 모습이 괜스레 더 챙겨주고싶은 느낌이었다.
이후부터였는지, 밀레시안은 아발론게이트를 가기 전엔 꼭 먹을 것을 챙겼다. 가끔 취미로 굽는 초코칩쿠키. 아니면 케이크나 버터비스킷. 그것들을 챙기고 가면, 우선 기사단 아이들을 살피며 엘시나 카나, 아니면 로간이나 디이. 가끔은 새침스럽기는 해도 곧잘 받아먹는 아이르리스에게 주곤 한다. 안타깝게도 카오르는 단걸 그다지 좋아하지않아보이는 눈치였기에 달지않은 것일때 말곤 주지않았다. 그러고나면, 또 꽤나 남기에 곧장 문 쪽으로 간다. 그 반짝이는 동경에 찬 눈을 보며 먹을것을 주면, 굉장히 잘 먹는게 괜스레 기뻐지기도 했다.
"알터는 굉장히 잘 먹네?"
그런데도 찌지않는 체질은 부럽기는 했다. 밀레시안은 체형 유지를 위해 정말 먹고싶은 양보다 극히 소량만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야 밀레시안님이 주신거니까요! 특히 버터비스킷을 제일 좋아해요!"
그야말로 밀레시안을 위한 답이였다. 찡해지는 가슴을 억누르며 알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밀레시안은 복스럽게 먹는 알터를 보며, 그의 몸을 봤다. 갑옷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지만 얼마나 먹어도 탄탄히 유지되는 근육이 선하게 보이는 듯 했다.
"알터는 살 안찌지?"
"매일 수련중이니까요!"
역시 그렇겠지 싶어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곤 쿠키 하나를 집어먹었다. 괜찮게 잘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알터를 유심히 살폈다. 눈동자 색, 맑은 초록색이네. 피부도 하얗고. 부럽네-. 그러다가 문득 이런걸 왜 보는걸까 본인 스스로 의문을 가졌다. 괜히 근력에 대한 관심을 가졌더니, 몸부터 시작해 결국 얼굴이라니. 본인이 그렇게 얼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밀레시안들은 애초에 예쁘고 잘생겼다. 그런 걸 보면 누가 어떻게 생기든 관심이 사라진다. 외려 특이하게 생긴 경우 더 관심이 가지. 그리고 밀레시안이 보기에 알터는 전형적인 미소년이었다. 자각하고 나니, 갑자기 가슴속의 간질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밀레시안님, 어디 아프세요?!"
밀레시안은 알터의 말에 흠칫 고개를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안 아파."
그러나 알터는 믿지 않는 듯 밀레시안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수련 덕인지 악력이 굉장했다. 곧 알터는 자신의 힘이 세다는 걸 깨닫고 손힘을 살짝 풀어주었다.
"정말이야. 알터는 상냥하네."
놔주면 안 될까? 그 말에 알터는 손을 풀었다. 주인에게 잘못한 강아지 마냥 끙끙 대는 표정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밀레시안님이 아프면 안 돼요. 밀레시안님은 영웅이니까."
아, 밀레시안은 짧게 탄식했다. 둘은 같은 맘이 아니었다. 동경과 사랑. 비슷한 듯 다른 둘. 밀레시안은 알터에게 제 맘을 강요할 수 없었다. 깨닫고 보니 저를 보는 반짝이는 눈과 드러나는 표정이 무척이나 좋아졌다. 간식을 챙겨오면 꼬박꼬박 먹어주는 것 또한 좋았다. 지금 막 알게 된 것을 본인 앞에서 털어놓을 만큼 밀레시안은 용기 있지도 않았다. 밀레시안은 그저 하라니까 하고, 죽지않는 몸을 이용해 쉽게 해버린 어쩌다보니 영웅이 된 인물이었을 뿐이다.
"그렇지. 걱정시켜서 미안해. 오늘은 이만 가볼게."
밀레시안은 알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몸을 돌려 조금 급하게 아발론게이트를 나갔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갑자기 터진 둑은 어느새 넘실대는 감정을 폭발하 듯 내뱉었다. 밀레시안은 본인 스스로를 추슬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건 지독한 짝사랑의 열병이라고 생각했다.
with. 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