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로우 프로젝트 _ 루
- 루프 종료 시점(서머타임 레코드) 이후 고등학교 If.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벌써 세 번째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부실은 여전히 텅 비어있다. 교실, 양호 교실, 도서실, 하다못해 매점과 교무실까지도 돌았는데 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웬만하면 교내에서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 테지만 괜히 마음이 답답했다.
일단 전화라도 받으면 좋을 텐데 말야‥. 핸드폰의 0을 길게 눌러 전화를 걸면, 꺼져있다는 딱딱한 음성 메시지만이 자신을 반겼다. 시선이 아래로 떨어짐과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청포도 맛 사탕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루가 좋아하는 사탕이었다. 어제 저녁부터 먹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던 탓에, 잊지 않고 사들고 왔지만 정작 받아줄 당사자가 보이지 않았다.
애꿎은 실내화 앞코를 바닥에 구기며 생각했다. 어디에 간 거지. 지금 누구와 있는 걸까? 아니다. 고개가 설레설레 저어졌다. 저와 아야노, 선배들을 제외하면 그다지 친한 녀석도 없을 터였다. 누가 들으면 너무한 말이라고 할지 모르는 일이지만 실제로 그랬다. 사교성은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니까, 루도. ‥뭐 지금은 그런 건 됐고. 어디 있느냐가 문제인데. 사탕도 얼른 전해주고 싶고. 복도 한 편에 걸린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던 신타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신타로 군? 나야. 루쨩은?]
“아아. 아야노 너였냐‥. 그게 아직. 어디 갔는지 통 안 보여.”
“혹시 넌 알아? 야? ‥여보세요?”
울리는 벨소리에 급히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대었다가. 아야노인 것을 알고는 말을 늘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몇 시더라. 다 같이 방과 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나 끼니를 때우고 숙제를 하고 갈 참이었었다. 교실 안으로 보이는 시계의 시침이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야? 스피커를 통해 무언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 손에 들린 사탕 봉지의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기울이다가, 그럴 리가 없지 싶어 이내 말았다. 반문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묻힐 정도의 웅얼거림과 잡음이 들리다가 조용해졌다. 다시금 슬그머니 스피커를 제 귀에 가져다 눌렀다.
[뭐야, 너 아직도 못 찾았어?]
아. 아무래도 아야노가 핸드폰을 넘긴 모양이었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바뀐 목소리에 신타로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끄러운 소리들은 이거 때문이었나. 모른다고 하고 싶어도, 자신만큼은 모른다고 하기가 어려운 목소리였다. ‘타카네 선배?’ [? 어, 맞긴 한데 뜬금없다 너] 제 말에 타카네가 얼떨떨한 듯 말했다.
“뭐, 아냐. 그래서 전화는 왜 바꿨는데?”
“‥바로 반말하는 거 봐라. 정 없는 자식. 아니 루 못 찾았다며, 너!”
“예, 예. 그래서 찾고 있잖아? 도움 줄 거 아니면 끊어. 루한테 전화라도 오면 어떡하냐.”
“아오, 성질머리. 사람 얘기는 좀 끝까지 들으라고‥! 혹시 너 양호 교실 갔었어?”
“‥하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제일 먼저 가봤거든?” 2차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신타로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가봤어. 새끼손가락으로 반대쪽 귀를 후볐다. 아아- 왜, 뭐 루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대? 영양가가 없다고 생각한 질문에 툭툭, 던진 말이었다. 그러나 곧 이은 타카네의 말에 눈이 크게 떠졌다.
“어? 어. 루 있는 거 봤는데. 역시 너랑 같이 있던 거였나? 근데 뭘 못 찾았다는 건데?”
“‥하?! 무슨 소리야?”
“뭐야 아까부터‥ 아니. 아까 하루카랑 지나가는데, 양호 교실 앞에서 누구랑 있더라고.”
“너랑 비슷하게 생겨서 넌 줄 알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뚝, 전화가 끊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신타로 자신이 직접 끊은 것이었다. ‘누구랑 같이 있다니? 대체 누구랑?’ 아까 전에는 이 생각을 하며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지금은 고개가 움직이지 않았다.
1층으로 향해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거의 경보 수준에 가깝다고 해도 들어맞았다. 교무실, 부실을 지나며 점점 사탕 봉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 자신이 왜 이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본 연애 책에 의하면 마른 손에 땀이 차고 두근거리는 심장의 이유는, 질투에 가깝게 서술되어있었던 것 같았다.
‘‥어쩐지 꼴사납네.’
입가에 자조적인 웃음이 띠었을 땐, 신타로의 다리는 이미 달리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졌다. 이제 코앞에 있었다. 지금 짚고 서있는 벽의, 귀퉁이 하나만 돌면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벽을 짚고서 잠시 숨을 골랐다. ‥하아, 아아… 체력 관리 좀 하던가 해야지…… 긴 복도 하나와 계단을 통해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왔을 뿐인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주르륵. 툭. 사탕 봉지가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손가락에 먼저 힘이 빠진 탓이었다.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후들거리는 느낌은 사라지고 오래가는 편안함만이 다리를 감쌌다.
앉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올라오는 건지 발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그걸 신경 써서 일어나기엔, 자신의 라이프가 이미 제로였다.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이랑 루가 있었다는 건 확실히 분하긴 한데. 뛸 것 까진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허튼 수작부리는 거였으면 말로 이겨도 됐지 않았을까? 고개를 위로 꺾으며 숨을 골랐다. 으헉. 나. 횡격막 부서진 거 아니야‥? 하아… 콜라 마시고 싶다. 땀방울이 맺힌 얼굴에 무력감이 가득 들어차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계단 쪽에서 들리던 발소리가 바로 옆에서 타닥, 멈췄다. ‘선생님 아니면 부활동 하는 학생이겠지’ 자연스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꺼풀 아래의 눈동자가 굴렀다.
“신타로, 여기서 뭐해‥?”
“‥엉?” 얼빠진 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듯 눈이 번쩍 뜨였다.
*
번쩍 뜨인 자신의 눈꺼풀과 동시에 반짝, 하고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타카네나, 아야노한테는 이미 라인을 남겨둔 상태였다. 우산을 가지고 마중 가겠다는 연락이 와, 급한 대로 아무 교실에나 들어와 앉은 둘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 많이 오네‥’ ‘그러게’ 따위의 시시콜콜한 말을 하다 보니. 사이에 괜한 적막이 흘러 눈이 마주쳤다.
“무슨 할 말 있어?”
“아니. 가… 아니. 큼. 너 부실에 안 있고 어디 있었던 거야, 대체?”
“어? 내가 얘기 안했나…?”
“안 했어.” 빠르게 대답한 신타로가 사이를 가르고 있는 책상 위에 턱을 괴었다.
루가 멋쩍은 듯 뺨을 긁적거리다 입을 열었다.
*
‘미안해‥!’ 뒤에 붙어 나오는 말들은 신타로의 마음을 안심케도, 허무하게도 만들었다. 루가 발성 트레이닝을 도와줬던 합창부 후배가 감사와 함께 주스를 사줬을 뿐이라니. 그래도 참 다행이지. 결국 교내가 넓으니 엇갈렸었던 것뿐이라는 사실이 안심되기는 처음이었다.
애초에 그 후배는 이미 둘이 사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에게 이온음료와 함께 콜라도 건넨 걸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으윽. 뚱뚱한 콜라 캔을 품에서 꺼내는 루의 얼굴이 잔망스러웠다.
말없이 지켜보던 신타로는 바람 빠진 표정을 한 채. 자신 앞의 망글망글한 뺨을 콕, 찔렀다. 근데 연락은 왜 안 받아? 아, 연습 중에는 핸드폰 꺼두기로 해서‥ 까먹었어. ‘헤헤’ 하는 가벼운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하아, 다음엔 부활동 끝나면 꼭 켜기. 약속해줘. 신타로가 한 손으로 약속의 표시를 내밀며, 남은 손으로는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초록색 사탕 봉지를 흔들었다.
“! 청포도 맛!”
‥아, 맞다. 응. 꼭 그럴게! 기다려줄 틈도 없이 내민 자신의 손가락에 루의 OK사인이 냉큼냉큼 걸렸다. 사탕 봉지를 넘겨준 후, 더욱 싱글벙글해진 얼굴에 어쩐지 기분이 묘해져 의자를 옆으로 끌어 앉았다. 그새 사탕 두 개를 까서 입 안에 넣은 루가 고개를 기울였다.
“저기. 루.”
“응? 아, 신타로도 줄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손을 내저은 신타로가 짐짓 진지하게 루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큼. ‥사탕이 좋나, 그, 내, 내가! 좋… 나 궁금한데.”
“? 당연히 신타로.”
자신이 사탕 봉지를 흔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즉각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다행이다‥ 아니. 다행까지 할 일이었냐고, 나‥?’ 웃긴 질문이라고 생각해 창피하기도 했지만, 막상 대답을 들은 후에 깨끗해진 머릿속 덕에 딱히 나쁘지 않았다.
개운한 기분이 된 신타로의 입 꼬리가 실룩거렸다. 얼굴로 원맨쇼를 하는 신타로를 보고 있던 루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는지 새로 작은 사탕 봉지를 뜯었다. ‘먹을래?’ 다시 한 번 사탕을 권했다. 동그랗고 불투명한 녹색의 사탕 하나가 신타로의 입 앞에 들이밀어졌다.
“어. 먹을래.”
자신 앞에 내밀어진 손을 감싸 잡은 채로, 사탕을 우물거리고 있는 입술에 제 입술을 맞붙였다. 달큰한 청포도 향이 잇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with. 키사라기 신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