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_ 까만부엉이
학교에서 가정실습을 했다. 쿠키를 만든다고 해서 꽤 기대했던 수업이다. 스스로 손재주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더더욱 그랬는지도. 실제로 내가 만든 초코 쿠키는 성공적이었고,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 달달한 쿠키를 용지에 싸서 잘 포장한 뒤에 떠오른 사람은,
오소마츠 씨도 좋아하시려나.
당신이었다.
보통 하교는 친척형제자매들과 함께 하지만 당신을 만나러 갈 때면 그 애들에게 먼저 가 있으라고 말하곤 했다. 당신을 부끄러워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쩐지 아직은 소개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과 난 이렇다 할 사이가 아니었고, 솔직히 말하면 뭐라고 정의해야할 지도 모르는 그런 사이였으니.
“안녕하세요, 쵸로마츠 씨.”
“어라. 칸자키… 였지?”
“네. 오늘 오소마츠 씨는 집에 있나요?”
당신의 본가는 우리 집과 가까웠다. 가는 길목에 있는 당신의 본가. 차마 초인종을 누를 자신은 없어 어쩔까 망설이던 중 당신의 형제인 마츠노 쵸로마츠 씨가 나왔다. 그 사람은 까칠해 보이지만 실은 상냥했으므로 친절하게 내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그건 뭐야. 쿠키?”
“가정 실습 시간에 잠깐….”
“좋구나, 쿠키. 에 근데 그거 오소마츠 형한테 가져다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냥, 좀….”
“그 인간은 무슨 복을 타고나서…. 칸자키 군도 고생이네.”
쵸로마츠 씨는 내가 당신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당신의 형제들 중 유일하게 쵸로마츠 씨만 알고 있다. 쵸로마츠 씨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에 지금 오소마츠 형밖에 없거든. 느긋하게 쿠키 전달해주고 가.
쵸로마츠 씨는 상냥하다. 그 사람은 내게 손을 흔들어 주고 어디론가 바삐 걸음을 옮겼다. 얼떨떨하게 안으로 들어가니 1층에서는 커다란 TV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당신이 깔깔거리며 크게 웃는 소리도 들린다. 어라, 쵸로마츠. 너 나간다고 하지 않았나? 당신은 누군가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그게 방금 나간 쵸로마츠 씨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보다 쵸로마츠, 오소마츠 씨 배고프다! 뭐라도 해줘!
“안녕하세요.”
“힉. 뭐야. 아키쨩?”
칸자키 아키라. 그게 내 이름. 당신은 날 언제나 애칭처럼 친근하게 아키쨩이라고 부른다. 그런 애칭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쯤 내 친척 자매들이 부르던 애칭이다. 지금은 그 누구도 날 그렇게 부르지 않지만 당신은 어째서인지 날 아키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쵸로마츠 씨처럼 단정하게 칸자키 군이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내 다른 친척형제자매들처럼 아키라, 하고 부르는 것보다 당신이 아키쨩이라고 불러주는 호칭이 좀 더 따뜻한 느낌이다.
“잠깐 주고 싶은 게 있어서 들렀어요. 막 외출하시던 쵸로마츠 씨가 들여보내 주셨고요. 혹시 폐가 됐어요?”
“아니아니아니. 그냥 좀 놀라서.”
당신은 예의 상냥한 미소를 짓고 옆자리를 탁탁 손바닥으로 친다. 앉으라는 뜻이다. 집주인의 허락을 구해 조신하게 무릎을 꿇고 앉자 당신은 좌식 식탁에 푹 너부러져 배가 고프다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랑 아빠는 내일까지 안 오고, 토도마츠는 지 친구들끼리 여행. 쥬시마츠는 어디 갔는지 안 보이고 쵸로마츠 녀석은 외출. 카라마츠는 또 무슨 카라마츠 걸즈인지 뭔지 찾으러 떠났고, 이치마츠는 고양이 밥 주러 갔겠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가만히 식탁에 엎드려 있던 당신은 팔을 괴고 날 올려다보며 푹 한숨을 쉰다. 어쩔 수 없나. 그렇게 중얼거린 당신은 바닥 어딘가 굴러다니던 앞치마를 툴툴 털어 목과 팔에 끼워 넣었다.
“?”
“아키쨩. 밥 먹었어?”
“아. 학교에서 점심은 먹었어요.”
“으응. 근데 지금 저녁 먹을 시간이지?”
시계를 보니 4시가 넘어가고 있다. 학급 당번이었던지라 학급청소가 다 끝나고 마무리를 한 뒤 일지를 쓰는 일까지 하고 나자 평소 하교 시간보다 늦어진 감이 있다. 당신은 날 돌아보며 씩 웃는다. 그러고는 말했다.
“어차피 이 자식들, 저녁시간까지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으니까. 오소마츠 씨랑 밥 먹자 아키쨩.”
이유는 단순하다. 혼자 밥 먹는 건 외롭다고 하던가.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휴대폰으로 메일을 써내려갔다.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친척들에게 보내는 메일이다. 오늘 밥 먹고 들어갈 것 같아. 이렇게 보내면 그 애들은 알아서 날 빼고 저녁을 챙겨 먹을 거다.
“오소마츠 씨는 평소에도 요리를 하세요?”
“아아니. 귀찮아서 안 해. 평소에는 엄마가 있고. 또 나, 요리 같은 거 할 줄 안다고 하면 망할 형제들이 엄청 부려먹을 게 틀림없고.”
당신은 간단하게 볶음밥이나 할 거라며 뒤적뒤적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폼이 꽤 능숙해 보였다. 다른 녀석들은 집 밖에서 끼니 해결하는 경우가 많긴 한데 난 대부분 집에서 먹고 하니까. 아무도 없으면 내가 해먹거든. 칼질이 엄청나게 화려한 건 아니지만 단정하게 재료들을 토막낸다. 뭔가 도와줄 건 없나 싶어 안절부절 하자 당신은 푸하,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는다.
“괜찮아 괜찮아. 아키쨩은 우리 집 손님이니까 특별히 서비스. 카리스마 레전드가 해주는 밥, 흔하지 않다고.”
다칠 수도 있으니까 저기 앉아 있어. 나는 빤히 당신의 옆얼굴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어리광에, 투정에 어려보이지만 확실히 나보다 연상은 연상인가 보다. 칼질에 집중하는 당신의 옆얼굴은 꽤 진지해서 평소와는 달라 보일 정도다.
“볶음밥은 정말 금방이니까.”
정말 눈 깜짝할 새다. 당신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게 얼마나 됐을까. 열심히 프라이팬을 들었다 놨다 하던 당신이 서투르게 접시에 모양을 내어 볶음밥을 담았다. 그것마저 내 눈엔 사랑스러워 보여서 나는 그 기색을 숨기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당신이 내게 숟가락을 건네준다. 반찬으로는 간단하게 조림이라던지, 단무지 같은 걸 내왔다. 조심조심 한 술 떠먹자 볶음밥은 생각보다 더 맛있었다. 맛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열심히 씹어 목뒤로 넘긴 뒤 당신을 보자 당신은 멍하니 내가 먹는 모습만 쳐다보고 있었다.
“오소마츠 씨?”
“응. 응? 아, 맛 어때?”
“맛있어요. 오소마츠 씨, 요리 잘 하시네요.”
당신은 커다란 눈을 두어 번 꿈뻑이다 씩 웃는다. 당연하지. 뭐든 레전드 급으로 해낸다고. 내가 맛있다고 하자, 그때서야 안심한 듯 당신은 열심히 수저질을 한다. 나도 흘러내리는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며 마저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TV에서는 시시한 농담거리를 주고받는 개그 프로그램이 방영중이다. 시끄러운 TV소리와 수저질. 먼저 그릇을 비운 건 당신이었다.
“후아, 배부르다.”
“먹는 것도 빠르시네요.”
“응? 아. 버릇이야 버릇.”
“버릇?”
“나, 육 쌍둥이잖아. 그래서 눈 깜짝하면 간식이나 맛있는 반찬이 싹 없어지고 그런단 말이지.”
“아아.”
“그러다보니까 빨리 먹는 게 일상이라서.”
친척형제와 친형제는 또 다른 모양이다. 친척들과 다 같이 모여 사는 우리 집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다. 나는 밥풀을 싹싹 긁어 먹은 뒤 그릇을 정리해 부엌에 가져갔다. 오소마츠 씨도 뒤따라 그릇을 개수대 안에 넣는다. 설거지는 나중에 다른 놈 하나 시키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당신은 배를 문지르며 1층 큰 방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카라마츠 씨가 저녁 설거지를 하게 될 것 같다.
“자, 저녁은 그렇다 치고. 다 먹고 나니까 디저트 땡긴다.”
당신이 그렇게 말한 덕에 난 내가 이 집에 들어온 목적을 떠올렸다. 안 부스러졌으려나. 퍼뜩 떠올라 가방을 뒤적이자 다행히 모양을 그대로 간직한 쿠키가 보인다.
“아키쨩?”
“그러고보니 제가 왜 오소마츠 씨를 찾아왔는지 말을 안 한 것 같아서요.”
“에, 그거 뭐야?”
“쿠키요. 이번 가정 실습 시간에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잘 만들어져서. 그래서 맛보여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당신의 눈이 반짝인다. 식탁에 놓고 종이를 펼치자 차곡차곡 잘 쌓여있는 쿠키 탑이 무너진다. 정말 조심조심 포장해뒀기 때문에 부서진 건 없는 모양이다. 당신은 하나 집어 들어 그대로 입에 가져간다. 와작, 부드럽게 깨지는 쿠키는 당신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오. 맛있어. 아키쨩 소질 있네!”
“다행이에요.”
당신은 어린아이 같은 면에 비해 지나치게 단 과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이 쿠키도 조금 덜 달게 만들었다. 담백한 맛이 강할 쿠키는 당신의 입맛에 꼭 맞았던 모양이다. 두 개 정도 더 집어먹던 당신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맛있어. 내게도 하나를 건네지만 나는 이미 많이 먹었다는 핑계로 고개를 저었다.
“이거 나 주는 거?”
“네. 주고 싶어서 왔으니까요.”
잘 먹을게! 당신은 환하게 웃는다. 당신은 키득키득 웃으며 쿠키 담긴 종이를 다시 싸기 시작했다. 남겨뒀다가 다른 놈들 오면 자랑해야지. 역시나 어린아이 같은 당신이다.
“적당히 달아서 딱 좋다, 이거.”
“입맛에 안 맞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렇게 말해주니 제가 더 고마워요.”
“난 고작 볶음밥 만들어줬는데.”
“형제들한테도 안 해주는 볶음밥이잖아요. 그걸로 만족하는 걸요.”
오소마츠 씨는 배웅을 핑계로 슬리퍼를 신고 집 정문까지 나왔다. 손에는 잘 포장된 쿠키를 든 채.
“아키쨩은 나중에 참한 색시가 되겠네.”
“아….”
당신은 가끔 짓는 은근한 표정으로 손에 든 쿠키를 쓸었다. 당신이 가끔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나는 쿵, 심장이 덜컥거리는 것 같다. 그런 표정을 짓던 당신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다시 악동 같은 얼굴을 하고 내게 손을 뻗는다.
“아키쨩, 나중에 졸업하면 오소마츠 씨 색시로 올래?”
“…네?”
혼자 키들거리며 웃던 당신은 고개를 젓는다. 장난이야 장난. 하지만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남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아키쨩 남편 될 사람은 아키쨩이 해주는 쿠키 매일 먹을 수 있는 거잖아. 그건 좀 부러운데.”
“…….”
진담인지 농담인지 쩝, 입을 다시던 당신은 내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고 다음에 보자, 아키쨩. 나는 등을 돌려 몇 걸음 걷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내가 골목길을 돌아 사라지는 걸 볼 때까지 거기 서 있으려는 양 눈을 마주쳐 오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소마츠 씨.”
“응?”
“다음에 가정 실습이 있는데, 그때도 간단하게 초콜렛이라던지 쿠키라던지 만들 것 같아요.”
“…?”
“만들게 되면 또 가져올 테니 드셔주실래요?”
내가 말했지만 어쩐지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의 침묵 후 당신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드니 쿠키를 들지 않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당신이 보였다.
“그럼 나야 땡큐지. 여고생이 만든 쿠키, 흔한 거 아니니까.”
“…….”
“그때는 나, 또 볶음밥 해줄게. 놀러와 아키쨩.”
당신은 그 뒤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나, 볶음밥밖에 못 해. 결국 나 역시 그 말에 살짝 웃음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당신은 다시 손을 흔들며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답지 않은 말을 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다음. 다음에. 늘 아무런 접점도 없는 당신과의 다음은 내게 언제나 특별하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또 무슨 이유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건지 전전긍긍하는 내게는 더더욱. 하지만 이거면 충분하다. 충분해. 나는 이 작은 걸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왜냐하면,
─오소마츠 씨를 찾아갈 타당한 이유가 또 하나 늘었으니까.
with. 마츠노 오소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