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스토리 _ 르네님
달콤한 것, 하면 네가 생각난다.
파삭, 하고 입술 끝에서 부서져 내리는 쫀득한 코크, 혀 위에서 단숨에 녹아 거품처럼 달콤하게 사라지는 머랭 쿠키. 두껍게 구워 구름처럼 폭신한 팬케이크,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을 부드러운 향기로 그득히 채우는 바닐라 크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것들이기도 했다.
하얀 맨발이 테이블 아래로 쭉 뻗었다. 흰 원피스 자락을 팔랑이는 날씬한 맨다리, 인조적으로 흔들거리는 천 밑에서 언뜻 뽀얀 살결을 내비치는 말랑말랑한 허벅지, 장밋빛으로 물든 발끝이 빈 공간을 디디는 아슬아슬한 광경은, 언제나 그렇듯이 지극히 평화적이고도 외설적이었다.
즐거운 듯이 휘적거리며, 내 키에 맞추어진 의자에 앉아 땅에 닿지 않는 다리를 경쾌하게 흔들거리며, 너는 하얀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를 은제 포크로 갉작였다. 금색 문양이 테두리를 장식한 흰 접시가 퍽 우아하다, 그러나 그것을 한 손으로 들고 바닥에 묻은 생크림을 느긋하게 긁어내는 네 움직임은 경박스러우리만치 가벼웠다.
발그스름한 입술 끝에 묻은 하얀 크림을 날름 핥는 새빨간 혀, 마냥 하얗고 평화롭게 동그란 볼을 하고 입을 오물거리는ㅡ 예의라고는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까만 머리카락 위로 금빛을 띈 햇살이 너울거린다,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 사이로 부드럽게 새어 들어오는 흐릿한 빛과 어긋나듯이, 그 신형은 아플 정도로 선명했다.
“르네.”
하얀 어깨를 파득 떨며 놀란다. 보드랍고 섬세한 세계가 단숨에 뒤흔들려 내 발 밑의 세계와 뒤섞였다. 다만 이름을 부른 것 뿐이다, 그것은 실수였던가? 잡을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끌어온 기분이 들었다. 밤하늘을 별처럼 반짝이던 요정을 손으로 쥐어 새장에 가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너는 여기서 빛나서는 안 되는 이인 것이었는데.
크게 몸을 움찔한 신형이 가슴께를 짓누르며 이 쪽을 바라보았다. 하얀 옷깃을 움켜쥔, 뼈마디가 도드라진 마른 손은, 그 옷깃보다 하얬다.
약간의 두려움과 갑작스러운 놀람을 담고 동그랗게 뜨인 까만 눈이 내 세계를 고스란히 담는다. 별처럼 조각난 빛을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서 그림자에 가려진 듯이 새까맣기만 한 남자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너는 저항하지 않는다, 그 음험한 욕망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로 나를 담는다. 순진하고 무지하게, 인세의 죄 따위는 모르는 얼굴로.
너는 이내 주인을 발견한 강아지마냥 누그러든 표정을 했다. 조금 뾰로통하게 입술을 모았다가, 그것마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동그랗게 눈썹을 늘어트린다. 아마 네가 방금 목소리를 내었더라면, 쏘아붙이듯 새침히 놀랐어요, 라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얼굴이었다.
“르네.”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렀다. 너는 둥글게 부푼 뺨을 다소 급한 듯이 오물오물 움직인다, 대답을 하기 위한 것이 명확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꼭 어딘가로 도망가려는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허나 그렇다 치면 꽤나 우스운 상황 아닌가, 입 안에 든 먹이에 정신이 팔려 도망가지조차 못하고, 그렇다고 먹이를 포기하지조차 못해서 열심히 씹어 삼키는 꼴이라니. 그러나 정말 그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튼, 너는 단 것을 좋아했다.
“......됐어, 천천히 먹어라.”
“우음.”
그제야 동글동글 흔들리던 볼의 움직임이 천천히 나긋해진다. 행복한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가, 입 안 가득 들이찬 생크림과 스펀지 케이크의 달콤한 뒤섞임을 크게 삼킨다. 흰 목이 들썩이는 광경을 보았다. 그것을 잇새로 짓누르면, 딱 그만큼 달콤할 것 같았다. 크게 벌린 입 안쪽으로 가는 목덜미가 덥썩 물려 사라진다. 이빨이 박힌 얇은 살갗 아래를 가늘게 박동하는 생명의 증거, 코끝을 간지르는 까만 머리카락, 풍기는 향내는 이상하게 군침이 도는 종류였다. 우유 데운 냄새, 막 구운 쿠키, 슈가 파우더를 뿌린 베이비 슈. 달콤하고 보송보송한 것들. 혓바닥을 짓누르는 부드러운 살결에서는 늘 그런 맛이 났다, 늘 그런 향이 났다.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의.
...문득 입가를 더듬는다. 빈 입이 허전하다고 생각했다, 너는 입 안쪽에 남은 달콤한 여운을 놓치기 싫어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매정하기도 하다. 이렇게 배고픈 이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저는 방금 삼킨 사치품의 맛이나 음미하고 있단 말인가, 단 한 조각조차 나눠주지 않은 주제에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어린아이 같은 칭얼거림은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얘기했더라면 너는 당혹스러운 듯이 눈을 깜빡이며, 매그너스 님은 단 거 싫어하시잖아요, 하고 우물우물 눈치를 보았을 것이 분명했다.
아, 군침이 돌았다.
“르네.”
나는 속삭인다. 너는 대답한다.
“네에, 매그너스 님?”
달콤한 향기가 난다, 비단 케이크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조잡한 크림 덩어리로는 이런 향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달콤하고,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듯 하고, 어쩌면 약간 뜨겁기도 한.
네가 모르는 게 있다, 나는 단 것을 싫어하지 않아.
다가가 볼에 손을 얹는다, 너는 여리게 눈을 깜빡이다 얹힌 손에 볼을 부비며 웃었다. 짙고 거친 전사의 손 아래로, 크림과 다를 바 없이 연약한 하얀 피부가 녹아내린다. 꾹 쥐면 뭉개질 것만 같다, 그 이전에 잡은 것 같지도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달콤한 향기가 난다. 네 향이다, 오락적인 디저트 따위가 따라갈 수 없는. 태초의 사치품은 너를 본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새까만 머리카락에서 초콜릿 향이 났다, 머리 뒤쪽에서는 크렘 브륄레, 목덜미에서는 무화과 잼 냄새가 났고 다시 올라가면 블루베리 으깬 향이, 버터 향이 섞인 도톰한 카스텔라, 졸인 사과 냄새.
정말 못 된 여자야, 이마에 코를 갖다 대자 캐러멜 냄새가 났다. 설탕 녹인 것과 크림을 섞어 그 황홀하고 달콤한 향, 언젠가 젖먹이의 머리 꼭대기에서 꼭 그런 향이 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미 젖내나 날 애새끼들한테서 무슨 설탕 향이 난다는 것인가, 나 참! 그런데 너에게서는 정말 그런 향이 났다. 우유 적신 과자 같은 냄새, 따뜻하고 부드러운 솜털 같은. 목 안쪽을 그릉그릉 울리게 만드는 다정하고 매력적인 향.
“피곤하세요?”
“......아니.”
“그러면요?”
네 목소리는 얼린 설탕 표면처럼 또랑또랑하게 반짝이곤 했다. 유리와 아주 닮았지만 남기는 파열음도 상처도 아주 달큰한, 그리고 따뜻해지면 끈적하고 몽롱하게 녹아 버리곤 하는. 또렷한 네 말소리가 나긋하게만 귓가를 어루만진다. 나는 배가 고프다.
고개를 숙인다, 언제나처럼 네 목덜미에 얼굴을 부볐다. 저 하늘 위로 고개를 치들고 누구도 바라보지 않던 남자는 고작 저를 향해 사랑한다 속삭이는 작은 여자아이의 향을 탐하고 싶어 고개를 숙였다. 네가 이렇게나, 이렇게나 달아서.
목덜미에 코를 묻고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폐부를 채우는 꿈결처럼 달콤한 냄새, 나는 이런 동화적인 감상에 사로잡히는 남자가 아니었는데. 몸 안쪽으로 밀려들어오는 다디단 봄은 네 것이었다.
그렇다, 이런 달콤한 것이라면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네 몸을 샅샅이 훑어내어 삼키고 싶은 충동에 감싸인다, 입 근처에 와 닿은 부드러운 살결과 마른 몸에 도드라진 뼈의 굴곡을 망상처럼 난폭하게 물어뜯고 싶었다. 한숨을 쉬듯이, 조금 떨리는 더운 숨결이 입 밖으로 새어나갔다.
“......배고파.”
“그럼 식사를 준비하라고 이를까요?”
“아니......”
네 목소리가 아주 나릇하다. 달콤한 향과 따뜻한 체온에 묻혀 온 정신이 느른해졌다. 약에라도 취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그 어떤 변덕도 없이 스스로 취해버린 것은 자신이었다.
졸리신 것 같은데, 하고 조금 웃는 소리. 그러니까 졸린 게 아니라니까, 하고 말하는 것조차 나른함이 부른 게으름에 묻혀 잊어버렸다. 지나치게 평온하다, 지독하게 평화롭다, 입을 조금 달싹여 네 피부를 삼켰다. 단번에 움칫하며 굳어 오는 움직임.
“...음, 르네는 먹는 게 아니에요.”
먹는 거 맞아. 꾹 깨물면 즙이라도 흘러나오거나 혹은 녹아내릴 것만 같은, 마시멜로우 같은 살갗. 잘근잘근 씹으면 단 맛이 향에 섞여 감돈다. 떼어내지도 더 붙이지도, 움직이지도 가만히 있지도 못하는 몸이 연신 움찔거리다 이내 으으응, 하고 우는 소리를 낸다. 조금 웃었다, 꼴 좋다.
“아파요, 아파요. 르네는 고기가 아니에요, 르네는 작고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디저트지.
가엾은 요정님은 밤하늘에 슈가 파우더를 뿌리며 날아다니다 폭군의 손에 잡히고 말았네. 하지만 내가 억지로 쥐어 잡은 것은 아니야. 네가, 네가. 손 안에 앉았다, 내 것이 되겠다 청했다. 목덜미에서 입을 떼고 표정을 곁눈질한다, 줄곧 이 쪽을 바라보던 까만 눈이, 울상 가득한 시선조차 떼지 않고 그렁그렁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입 벌려.”
뭔가 투덜대려는 듯 하다가도, 얌전히 명에 따라 입을 열었다. 그래야지, 뭔가 말하기라도 하면ㅡ 당연히 들어 줄 생각은 없었지만, 쥐고 있던 얼굴을 살짝 잡아당겨 시선을 맞추었다. 너는 눈을 감지 않는다, 시선을 떼지 않는다, 도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영영 모르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영원히 내 것이라고.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말랑말랑한 입술에서는 무슨 맛이 났더라, 바람을 삼켜 차가워진 혀끝이, 입 안쪽의 온도와 완전히 똑같게 녹아내릴 때까지 질척한 꿀을 뒤섞는다. 네 눈이 너무 자극적이다. 까만 눈동자 안에 날카로운 노란 시선이 갇혀 있다, 나는 네 시선도 내 눈 안에 가둔다. 시선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이고 녹아내리고 망가져 흔적도 남지 않게 되어도 눈을 감지 않는다, 너도, 나도.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한계를 자극한다. 꾹 짓누르면 툭 터질 것 같을 정도로 너는 나를 부풀게 한다. 언제나 너는 자극적이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랬다.
내가 내민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받아먹을 텐가? 아마도 대답은 그렇다, 아니다, 확실히, 대답은 그렇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무엇을 입에 넣는지 감추어도 너는 순종적으로 무엇이든 삼켜낼 것이다. 그러니 상을 주자, 위스키 대신 독이 든 봉봉 오 쇼콜라.
무엇이 들었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달콤한 맛에 취해 망가져 가기를 원한다. 무지한 백지 위로 새까맣게 나를 새겨가는 순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네가 알 리도 없었다.
하아, 짧게 막혔던 숨결이 확 트여 차게 갈라진다. 귀 끝이 홧홧했다. 입 안에 단 맛이 남아있다, 열을 띤 네 볼을 더듬는다. 너는 새까만 눈으로, 무구하기 그지없는 죄악 같은 눈으로, 그렇게 나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말은 오가지 않는다, 너는 잡아끄는 손에 순종적으로 이끌린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어떤 반항도 없이. 접시 위에 놓인 조각 케이크처럼 아주 얌전하게.
그 순종에 망가져 내린다. 엉망진창이 된다. 여운을 더듬던 뱃속이 열로 들끓어 오른다. 이래서, 이래서, 이래서.
아,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 별 수 없다. 이런 달콤한 것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포크를 들었다.
너는 달콤한 것을 좋아한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하게 부서져 입 속에서 질척하게 달라붙는 꿀타래, 꾹 눌러 가르면 뜨거운 초콜릿이 쏟아져 내리는 퐁당 오 쇼콜라, 더운 숨을 불어넣으면 사르르 녹고야 마는 코튼 캔디. 없어진다면 살지 못한다고 과장할 정도로, 그렇게 투정을 부릴 정도로 늘 찾는 것.
그러니까 나는 너를, 달콤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하듯이, 나는 너를.
with. 매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