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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그레이맨 _ 리츠

"좋아하는 디저트?"

"응, 이번 임무를 나갔다 오면 사올 것 같아서요. 디저트가 무척 유명한 가게가 근처에 있다고 들었거든."

 

짧은 머리칼에 흑색빛을 가진 소녀가 주홍빛 머리를 가진 소년을 올려다보며 말을 건다. 꽤나 자연스런 분위기이며 부드러운 분위기가 둘의 사이를 어림진작 해주는 듯 하였다.

 

"음~ 글쎄, 케이크나 단 음식은 어떤 종류라도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꾸준히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말야."

"...그럼, 내가 알아서 사와도 괜찮아?"

 

소녀의 말에 소년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고르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거겠지. 그럴려나. 매번 싫은 적 없었다고? 내 취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야 당연한걸. 연인이니까 말야. 둘이 대화를 마치자 소녀는 자신의 연인에게 짧은 입맞춤을 맞추곤 다녀오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소년도 마주 손을 흔들어 보이고 소녀의 뒷모습마저 보이지 않았을 때 뒤돌아 제 방으로 돌아갔다. 엑소시스트로서 이제껏 많은 임무를 다녀왔지만 라비와 유하는 같은 임무를 다녀온 지 기껏 해야 두어번 정도였다. 연인 사이를 같은 전장에 내몰아야 한다는 것이 코무이 입장에서는 싫었을리라 생각했지만 나중에 리나리에게서 유하가 먼저 같이 임무에 가고 싶지 않아 양해해달라고 부탁한 것을 들었다. 배려였는지 자신의 욕심이었는지 라비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차라리 그런 편이 나았다고. 유하가 어떤 생각을 했든 그것이 분명 나은 생각이었다고 느껴졌다.

 

 

 

*

 

 

 

"마들렌이네?"

"아, 리나리. 하나 먹을래?"

"에? 그래도 돼?"

 

라비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은 향긋한 레몬향이 나는 마들렌이었다. 그의 한 손에 다 들어올 정도로 작은 마들렌과 투명한 봉투 안에 든 다른 색들의 마들렌들은 누가봐도 예쁘장하게 생긴 것들이었다. 유명한 가게라고 하더니 확실히 그런 맛에, 그런 모양이다.

 

"유하가 사다준거지?"

 

리나리의 말에 라비는 고개를 끄덕인다. 리나리의 손에는 분홍빛 마카롱을 들고 있었다. 유하는 어떤 디저트를 사다줄 지 자신에게만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엑소시스트 동료들은 물론, 과학반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파인더들의 몫까지 각자에게 어울리는 것이나 원하는 간식들을 사온 것이었다. 정작 본인은 임무에 다녀오자마자 간식들을 나눠주기만 하고 어떠한 것도 입에 대지 않은 채 잠에 들기 위해 방에 들어가버렸지만. 유명한 가게라면 가격은 높고 수량은 얼마 없었을텐데 어떻게든 사다주겠다고 고민했을 유하를 떠올리자면 무척이나 그녀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는 타인. 검은 교단에 있다보면 다들 그런 맘이 드는 것일까. 라비는 이어져가는 자신의 생각을 멈추었다. 리나리를 앞에 두고 생각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지만, 깊게 생각할 수록 자신만이 힘든 것이었다. 유하는 원치 않았다. 자신이 우리의 관계에 깊게 생각하여 사이가 어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제 연인을 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그런 연인이니까.

 

"라비, 그거 알아?"

 

자신이 다른 생각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는지 리나리는 어느새 화제를 돌려 라비에게 질문을 던졌다.

 

 

*

 

"라비, 마들렌 맛은 어땠어요?"

"어?"

 

평소와 같이 제 품에 들어와 질문을 던지는 그녀를 라비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번에 만났던 리나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마들렌의 의미는 첫사랑이래'

 

 

자신이 첫사랑이었나? 오히려 그녀가 자신의 첫사랑은 아니었을까. 여성이라면 스트라이크를 외치며 눈에서 하트를 날리는 자신과 달리 유하는 오히려 남자를 피하곤 했다. 정확히는 남자 뿐만이 아니라 어색한 사람들은 다 피했지만. 친절을 베풀어 주었던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유하의 외모는 예쁜 쪽에 속하면 속했지 절대 어디서 기죽을 외모도 아닐 뿐더러 성격도 착해서 -절대 연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건 북맨으로서 중립을 지키고 하는 말이다.- 파인더들 사이에 간혹 이야기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그녀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였던 것은 자신 뿐인가? 혹시나 알렌을 먼저 만났더라면?

 

"라비?"

 

한참 답이 없자 유하는 결국 라비를 부르며 자신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제서야 라비는 입을 천천히 열며 그녀의 질문에 답을 주었다.

 

 

 

"내가 첫사랑인거야?"

 

 

라비의 말에 유하의 눈이 커지는 듯 싶더니 금세 얼굴이 빨개져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차 싶었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자니 정답인 듯 하였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웃어버린 것을 숨기지 않았다. 웃지 말라며 웅얼거리는 모습마저도 귀엽다고 생각한 것은 비밀로 둔 채 라비는 마냥 유하의 답만을 기다렸다. 어떻게 알았어요? 리나리가 말해줘서 알았어.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굳이 알릴 생각도 없었다며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줄 몰랐다고 유하는 답하였다. 그러곤 곧장 말을 이었다.

 

 

"라비도 내가 첫사랑인가요?"

 

 

사실 첫사랑은 중요하지 않지만, 오히려 첫사랑은 헤어진다는 말이 많으니 내키지 않는다고 덧붙이는 그녀의 모습에 라비는 방금까지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아마, 아마도. 그렇게 답하자 유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 것이 전부였다.

 

 

*

 

 

라비는 제게 첫사랑이다. 겨우 빵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연인에게 선물하는 것이 자신의 취향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행동이 싫은 게 아니었다. 직접 말하지도 못하면서 마치 알아달라는 듯 돌려서 표현 할 수 밖에 없음을 유하는 내키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은 마지막 사랑이 하고 싶었는데. 우리는 그런 사랑을 하니까. 자신이 첫사랑이냐는 질문에 애매한 답을 한 라비를 향해 유하는 그렇게 말했었다. 한순간 라비가 미간을 좁힌 표정을 지었던 것을 유하는 놓치지 않았다. 간혹 가다 자신이 죽음으로 끝난다거나 널 마지막으로 둔다거나 이런 말을 하면 라비는 금방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런 얼굴을 보자면 라비가 착한 사람인 것을 유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참 좋았다. 그가 결국 자신을 내치지 못한다는 것도, 이런 말을 해도 위로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마냥 싫다는 표정을 짓는 것도, 결국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라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유하는 좋았다.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어도,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좋은 감정이나 혹은 나쁜 감정을 느끼게 될 라비를 유하는 좋아했다. 첫사랑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마지막 사랑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그저 이런 말을 할 수록 자신을 생각해줄 라비가 보고 싶었다고 유하는 생각했다. 나도 참 짖궃은 사람이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삶이기에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이 눈을 감기 전에 더 많이, 라비의 머릿속에 남겨두어야 했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이니까.

with. 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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