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왕자님 _ 게렝쥬
with. 코토부키 레이지
초겨울의 주말, 레이지에게 있어선 오랜만의 달콤한 휴일이고 쥬에에게는 여느 때와 같은 평화로운 휴일이 다가왔다. 출퇴근 시간이며 식사 시간이나 연락할 수 있는 시간, 정기적인 휴일까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은 애인을 둔 탓에 쥬에는 항상 조금 외로웠고, 업무 일정이며 정기적인 휴일까지 전부 명확한 애인을 둔 덕분에 레이지는 항상 조금 애가 탔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을 연인인데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지내는 탓에 둘 다 스트레스가 조금씩 쌓일 즈음, 희소식이 찾아왔다.
레이지가 오랜만에 제대로 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두 사람의 휴일이 겹친다는 것. 날짜가 맞지 않으면 휴가라도 신청할 기세였던 쥬에는 뛸 듯이 기뻐했다. 가끔 둘의 휴일이 겹칠 때면 매번 그랬듯 쥬에는 퇴근길에 간단히 장을 봐 들어왔고, 레이지는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사무실에 들르지 않고 두 사람의 집으로 직행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으레 그렇지만 이 두 사람 또한 서로가 가장 우선이라 다른 것들에 눈길을 줄 새가 없었다. 쥬에가 봐 온 장 꾸러미도 레이지가 들고 온 작은 봉투도 그 날 밤의 어둠 속에서 까맣게 잊힌 채 내일 날이 밝으면 나도 활약할 때가 다가오겠지, 하고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반가웠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늦은 아침이 되어도 두 사람의 침실은 전등은 쉬고 있었고 쥬에의 고집으로 달아 둔 암막 커튼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이는 방이 이불 속의 쥬에가 계속 자고 있을 수 있도록 충분히 어두워야 했다는 뜻이었는데, 아쉽게도 거실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밝은 빛이 몰려 들어왔기에 아침잠이 많은 쥬에도 자연스레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임을 알았다.
실은 잠이 깬 지 한참이었음에도 포근한 이불이 맨살에 감기는 느낌이 달콤하여 일어나기 싫었던 쥬에는, 자는 척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녀와 달리 레이지는 조금만 자도 다음날 활동하기에 무리 없는 체질이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그런 그가 원인이겠지, 그런 것 보다 벌써 얼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달그락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도 낮은 웃음소리를 내는 연인이 침대에 걸터앉는 것도 생생히 느껴져도 쥬에는 그대로 자는 척 꼼짝을 않았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던데,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지 쥬쨩~?"
하루 이틀 일이 아닌지라 자는 척은 금방 들통나고 말았다. 둘둘 만 이불을 들치며 농을 건네는 목소리에 키득키득 웃으면서도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간다. 안돼요, 싫어요, 이러지 마세요, 투정을 부리자 레이지가 만화영화의 괴수처럼 요란한 '크왕-' 소리를 내며 이불째로 끌어안아 품에 가둔다.
"아냐, 안 돼. 나 머리 엉망이란 말이야."
"그래도 예쁘니까 일어나도록 하세요, 공주님. 커피가 식어버린다구?"
이불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품에 남은 한 줌의 이불을 쥐고 간절히 애원하던 쥬에는 커피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레이지가 내려주는 모닝커피는 쥬에의 잠을 깨우는 세 가지 특효약 중에 세 번째로 영험한 것이었다. 쥬에가 슬금슬금 이불을 걷어내며 품에 얌전히 안겨들자 레이지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이마에 입술을 부빈다. 장난치듯 애정 어린 몸짓을 나누고 쥬에가 완전히 일어난 것을 확인한 레이지가 그녀의 손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잔을 쥐여준다.
"하아아…. 저혈압이라 그런가, 모닝커피가 없으면 살 수가 없어."
"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셔. 스위츠도 있으니까?"
항상 반묶음으로 단정히, 그도 아니면 포니테일로 깔끔하게 묶여 있던 붉은 머리칼이었는데 막 일어나 묶을 새가 없었던 탓에 어깨와 등에 아무렇게나 흘러내려 있다. 긴 머리칼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찰랑찰랑 가볍게도 흔들린다. 평소의 모습도 좋지만 이렇게 무방비한, 맨 얼굴의 가벼운 모습도 매력적이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여기저기 뽀뽀세례를 하며 레이지는 다시 한번 자신이 그녀에게 푹 빠져있음을 인정하고 만다. ‘어떤 스위츠?’ ‘쥬쨩이 어제 사온 스위츠’, 간질간질한 대화를 나누고 좀 더 간질간질한 입맞춤을 나눈다. 침대 옆 탁자에 놓인 것은 모양도 빛깔도 다양한 귀여운 도너츠. 달콤한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레이지라도 이거라면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스위츠였다. 쥬에는 이를 알고 나서부터 둘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는 날이면 종종 도너츠를 사오곤 했는데, 그렇게 도너츠는 단순히 달콤한 간식이 아니라 둘만의 암호, 특별한 의미를 담은 상징이 되었다.
"계속 붙어있으려니까 꼭 꿈꾸고 있는 것 같아."
"푸후후.. 꿈이 아니야, 마이걸. 이 오빠가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아? 정 헷갈린다면 살짝 꼬집어봐도 된다구?"
"꼬집는 것보다 깨무는 게 확실할 것 같은데"
"으왓, 레이쨩 아픈 건 싫어~!"
침실에서 키득키득 즐거운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따듯한 커피도, 달달한 도너츠도 이 사랑만큼이나 향긋하다. 꼭 두 사람의 시간을 예쁘게 장식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두 사람의 약속이 담긴 상징.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함께 해 주세요, 둘만의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라는 의미를 담은 스위츠가 입술을 넘는다. 어젯밤 레이지가 가져온 뒤부터 아직까지 테이블 위에서 잠들어 있는 작은 봉투에도 같은 마음의 달콤함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모른 채, 쥬에는 제가 사 온 도너츠들을 보며 무얼 먹을까 즐거운 마음으로 고르고 있었다. 레이지만이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도 아무 데도 보내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제 연인을 끌어안고 장난을 친다. 디저트보다 달콤한 시간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